모든 경계는 허상이다.
모든 경계는 허상이다.
3차 호남정맥 환경탐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무주구천동에 들렀지요. 무주하면 구천동이, 구천동하면 무주가 쌍둥이처럼 따라다니는 그런 곳이지요. 서울행 버스를 기다니느라 터미널에서 오십분 정도 머물렀지요. 그런데 그 곳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상도사투리니 전라도 사투리니하는 토박이말들의 차이는 보통 서로 다른 단어의 차이에서도 나타나지만 그보다는 억양이라고 이야기하는 고저장단과 각종 연결․종결어미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단어의 차이야 몇 번의 반복 학습으로 가능하겠지만 후자는 왠만한 경우가 아니면 따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이야기인즉슨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무주는 분명 전라도인데 말에서는 그러한 느낌이 들지 않더라는 것이죠. 어찌보면 경상도의 냄새도 나고 또 어찌보면 충청도의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요. 잠깐 든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구천동이 있는 무주군 설천면은 오히려 덕유산 동쪽이라 거창이나 김천, 그리고 충북 영동과 아주 가까운 곳이더군요. 어느덧 내 속에도 초등학교 사회교과로부터 시작된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라는 국가적 지리개념으로서의 경계가 상징화된 관습으로 입력된 탓이지 싶었습니다. 무주하면 전라도고 거창하면 경상도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관습이 머리에 붙은 무주와 거창이 가깝다는 사실도 모른 채 구천동이 있는 설천에서는 자연스레 전라도식 억양을 기대하고 있었나봅니다. 그렇게 저도 경계라는 선에 막혀왔던 것입니다.
경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은 경계라는 것이 엄연히 우리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과 경계라는 것은 허상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영남이 노래하는 화개장터의 가사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지요. 어느 시인이 노래하듯 휴전선을 포한한 모든 경계에도 꽃이 피니 말입니다. 어쩌면 모든 경계는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강자들의 횡포인 것도 같습니다. 인간의 편리성이라는 허울좋은 가치를 내세우고 말입니다.
남녀라는 성의 경계가 그렇고 노소라는 세대의 경계가 또한 그러하며 장애아와 비장애를 가르는 장애의 경계,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이주와 비이주의 경계, 정규와 비정규를 가르는 경계, 그리고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까지..... 아마 다 헤아리려면 날을 꼬박 세고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경계라는 것과 관련하여 지배자와 위정자들의 선전도구로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것이 있다면 색깔론과 지역주의를 들 수 있겠죠. 사실 남북이니 도니 군이니 하는 것은 행정의 편리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건만 이를 악용하여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색깔론과 지역주의는 일반인들의 의식을 흐리게 하는 수단, 즉 허상의 주술로 작용하니 말입니다.
허깨비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저희들이 어렸을 때에는 술을 잔뜩 먹고 고개를 넘어가는 아저씨가 밤새 힘이 장사인 놈과 한바탕 씨름을 하고 놀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지요. 물론 이런류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있는 이야기이고 그 다음날 가보니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몽당비나 부지깽이 같은 사람의 손때가 오래 묻은 것이 놓여 있더라는 이야기가 어김없이 따라 붙지요. 그런데 허깨비는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린, 게다가 술까지 먹었다면 딱인 그런 사람한테 나타난다고, 그런 사람이 아주 외지고 어두운 곳을 걸어갈 때면 어김없이 나타난다고 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역주의와 색깔론도 허깨비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마음은 한없이 여린데 사리분별은 없고 겁 많은 인간에게 다가와 술을 권하는, 또는 씨름을 하자고 꼬시는 허상의 존재 말입니다. 동서를 가르고, 남북을 가르고. 가르고 자꾸만 가르는 모든 경계.... 또한 허상의 허깨비입니다.
자신이 놀았다는 대상이 허깨비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때는 이미 늦은, 우습고도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후입니다. 인생의 고개이든 시대의 고개이든 고개를 넘어갈 때 아니 일상의 거리에서 경계를 지우며 언제나 깨어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것의 차이는 인정하되 경계를 만들어 차별하지 않는, 모든 경계에도 꽃이 피듯 경계가 허상의 주술임을 알고 허물어버릴줄 아는 자세, 힘겹지만 즐거운 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