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산문

무안 지나는 길에

빛의 염탐꾼 2008. 8. 24. 05:58

무안 지나는 길에-11월 12일 금요일, 바람 세차게 불다

'아버지의 뼈속에는 바람이 들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그 구절을 입에 올린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실상 그렇게 썼건만 바람을 주문한 것은 아니였는데 갑자기 떨어진 수은주에 몰아치는 바람까지 전국의 모든 아름다운 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듯 전국의 모든 바람이 무안 앞바다로 배달되어 온 것 같습니다.

아침 이찍 우동 한 그릇 먹으로 무안 읍내를 지나는데 우연히 농협 앞에서 '아직도 양파정식을 생각합십니까?'라고 쓰인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궁금하여 들여다 보았더니 매년 계속되는 양파값 폭락에 올해는 양파를 많이 심지 말고 다른 작물을 심어보라는 무안농협 캠페인 내용이었지요. 돈이 안되니, 밭에서 그냥 썩어 나자빠질지도 모르니 전업을 하라네요. 그러나 전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고 금새 잊어버리고 무안읍내를 벗어나니 온통 양파모종을 이식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옹기종기 모여 계란판같이 구멍이 뚫린 비닐 속으로 양파모종(나중에 동네 어른에게 물어보니 지금 심는 것은 마늘모종이고 양파는 이미 몇주전에 심었는데 조금 자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양이 엄청났지요)하는 아주머니들, 아니 그 속에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밭 가장자리마다에서 갈대가 흰 머리를 날리는 날, 그 모습에 마음 한쪽이 우울해졌습니다. 이 가을이 지나면 자식들 걱정에 돈 안되는 농사일에 허리가 다시 휘청거릴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 해가 지날수록 그들의 뼈속에도 또 하나의 바람이 들어차겠지요. 그리고 그 뼈들은 바람을 닮아 닳고 닳아 지겠지요.

그 풍경을 뒤로 하고 돌아나오는 길,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멀리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이 되지 않아도 땅을 그냥 둘 수 없어 양파를 심는 사람들과 고향의 모든 어머니들, 그들의 뼈속까지 스며드는 바람이 밉지만 어쩔 수 없겠지요. 어찌 바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것이 풍력발전기 뿐이겠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그렇고 당신이 그렇고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