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항 여객터미널을 떠나며
목포항 여객터미널을 떠나며-11월 13일,수은주 떨어졌으나 바람은 휴업, 오후들어 빗방울 뚝뚝
섬은 기다림이다. 두 개의 바위 봉우리를 이고 있는 유달산도 기다림이다. 행여 기다리는 섬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기다림은 희망이다. 명절을 맞아 목포항 여객터미널을 찾아온 설레임도 잠시, 파도에 안개에 몇일밤을 항구에서 꼬박 지새다가 그대로 다시 타향으로 돌아가던 사람들, 티브에서 가끔씩 들리던 명절 소식같은 그 안타까움 그대로 그리움도 희망이다. 시간이 연장될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 기다림이고 그리움이고 희망이다.
앞으로 보이는 신안군, 다도해도 기다림이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아니면, 안개에 쌓인듯 희미하게 떠 있는 모든 섬들, 홍도, 비금도, 도초도, 안좌, 하의, 신의...... 그 모두가 기다림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기다림에도 등급이 있는 것일까? 흑산, 홍도, 제주의 쾌속선은 제1여객선터미널에 안좌, 암태, 비금, 도초는 제2여객터미널에 다시 장사, 하의, 신의, 조도로 가는 길은 제3여객터미널에 그렇게 기다림의 등급도 목포항에서는 3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쾌속선은 KTX처럼 빠른 시간을 달릴 테고 제3여객터미널의 배들은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나 비둘기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일테지. 거기에다가 유달해수욕장 신안비치호텔 앞에는 큰 기다림도 설레임도 없이 그저 한바퀴 섬을 빙 둘러오는 유람선이 떠 있다. 거기에는 그 어떤 기다림도 없다. 그렇게 쾌속선과 유람선엔 희망이 없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발신자번호서비스는 몇 초간의 궁금증과 또 몇 초간의 설레임을 우리에게서 가져갔다. 각종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우리의 뇌속에서 기다림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있다. 그렇게 일분이라도 빨리, 기다림은 생의 낭비가 된다. 속도가 지배하는 육지에도 바다에도 그리고 인간의 심장에서도 기다림은 낡은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풍경에 적응하지 못한 낡은 풍경들이 멀미를 일으킨다. 그렇게 나 또한 배를 타지도 않았는데 멀미가 난다.
오늘은 목포항 여객터미널에서 아니 제3여객터미널에서 쯤에서 안좌, 하의, 신의, 조도로 가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배를, 아니 어쩌면 아련하게 남아있는 청춘의 한때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섬을 바라보아도 좋을 일이다. 그렇게 희망을 기다리며 안개 속에서 바람 속에서 파도 속에서 발이 묶여도 ...... 기다림이 있다면 즐겁지 않은가?
희망, 버리지 않았다면 그 속에 기다림이 있고 기다림이 있어 시간은 버텨지고 연장되는 것 아닐까.
남도소식이 이어지도록 되도록이면 노력할께요.
11월 13일 밤 목포의 어느 PC방에서 황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