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산문

땅끝으로 가는 길

빛의 염탐꾼 2008. 8. 24. 06:00

땅끝으로 가는 길 - 11월 15일, 전공노 파업소식과 함께 다시 바람이 몰아치다.

해남읍에서 나오는 길입니다. 어제 밤 급하게 해남읍으로 들어 갈 때와는 또다른 느낌입니다. 뭐랄까요. 빛과 어둠의 시간차, 밤에 어둠을 달릴 때는 길고 멀게 느껴진 길이었는데 오늘 아침 거슬려 내려오는데 그렇게 길고 멀지 않은 듯 합니다. 물론 바깥의 풍경 때문이겠지요. 차창 밖으로 늦가을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내 마음의 풍경도 같이 흐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낮과 밤의 다른 시간대가 함께 존재하는 현실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어둠과 빛의 시차를 느끼며 말입니다.

라디오에서는 하루종일 전공노의 파업소식을 전합니다. 참여율이 낮다니, 높다니, 체육회와 자연정화활동을 하고 있는 지부가 있다는 이야기부터 정부의 엄중처벌에는 변함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그런데 왜일까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이런 소식에는 귀가 쫑긋해지고 톤이 높아졌었는데 내 마음은 무심경하고 입은 침묵의 말이 앞섭니다. 열심히 하라고 소리를 높인다거나 제풀에 지치겠지?하는 열정 아니면 냉소라도 보였으면 좋을듯도 한데 그러한 마음조차 들지 않는 나에게 기분이 상합니다. 열정에 들뜬 분노의 시절을 지나 세상에 등돌린채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던 냉소와 반전의 시대를 지나 나도 또한 아이러니한 세상을 향해 딴전을 피우는가 봅니다. 김영하같은 유명소설가도 못되는 데 말입니다.

어제 밤의 길이 오늘 아침에 달리 보였듯이 이 어둠도 알고보면 그리 긴 것만은 아닐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어둠 속에서도 차창밖의 풍경을, 아니 내 바깥과 안의 모든 풍경들에 열려있어야 겠지요. 껴안을 수 있어야겠지요. 

저녁에 되기 전에 땅끝에 도착했습니다.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발걸음을 이제 동으로 돌릴때가 되었습니다. 물론 서로 동으로 또는 북쪽으로.... 그렇게 남으로만 곧장 달리지는 않았지만 큰 줄기는 남쪽으로 옮겨온 발걸음이었지요. 그러나 내일부턴 동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저 멀리, 서해의 섬들이 남해의 섬들로 색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애에도 몇번의 방향전환이 있었겠지요. 물론 저에게도 있었지요. 20대의 열정과 서른살의 어둠, 그리고 다시 서른중반 때의 혼돈이 보입니다. 동에서 서로 아니면 뉴턴같은, 그것이 철들고 내가 선택한 몇번의  행로였습니다.

남들은 얘기합니다. 한 길로 쭉 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당신도 알겠지만 살다보면 그게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듯 말입니다. 그래요, 선택의 시간들이 그리 가볍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나의 선택은 저마다의 진중함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모든 선택은 생존입니다. 내일 아침 남해의 섬들을 향해 곧장 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죽음의 길이겠지요. 물론 순도 100%의 혁명을 향해 그 길을 간 몇몇의 인간들도 있지요. 그러나 나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더는 갈 수 없어 발걸음을 틀 뿐입니다.   

 

 

   

    외로움이 깊어 너는 또 하나의 마디를 엮고 있다

    내 삶의 마디에서도 언제나

    외로움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어느 핸가 쓴 '겨울대나무'의 전문입니다. 다시, 가다보면 북으로 혹은 다시 남으로 순간순간 발을 돌리겠지만 하나의 마디를, 줄기를 엮은 듯 합니다. 늦은 서른후반에 말입니다. 당신의 길은 어디쯤에 있나요. 모든 선택은 생존법칙입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삶의 허탈함과 외로움, 생존에 대한 사랑과 사무치는 그림움입니다. 그것이 없는 행동은 자유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자유가 아닌 한 때의 낭만과 일탈이겠지요. 생의 방향전환에는 생존에 대한 무서운 사랑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게 아닌 모든 맹세는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딴전도 당신의 열정도 생존법칙에 존재하는 사무침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지키기 어려운 다짐을 합니다. 

생존이 아닌 생활을 위한 운동엔 자본의 냄새가 납니다. 민노총과 전공노의 파업소식이 들리는 오후 내내 이런저런 생각들이 왔다갔다 합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고 비판해도 할 수 없습니다.생존이 아닌, 사랑이 아닌 행동은 지속될 수 없고 혹여 지속된다 해도 자본에 포획될 뿐이라고.... 아니, 어쩌면 벌서 포획되었을  수도 있다고.....  그러면 이제 나입니다. 당신입니다. 좀 더 아름다운 사랑과 그림움의 길을 향해......

2004년 11월 16일 밤 강진에서 황완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