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포에서 놀다
여기는 무안군 해제면 도리포라는 곳입니다. 맞은편 영광쪽이 손에 잡힐듯 보이는 아담한 포구입니다. 지도를 보면 무안군은 서해를 향해 북서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곳인데 여기가 제일 북쪽 지점이지요. 어제 거나한 단합의 휴유증으로 일찍 민박잡아 놓고 재충전중입니다.둘은 낚싯대 들고 바닷가로 가고 저는 몇일전부터 벼르던 메일을 쓰고 있지요. 물론 내 나름의 느낌을 정리하고 싶어서지요.
첫날 줄포에서 부터 내려오는데 서해의 독특함이 느껴집니다. 가도가도 갯벌이 이어지는데 그야 다른 매체를 통해서 많이 보아온 터라 별다른 느낌을 받진 않았지만 꼬불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보니 동해안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지요. 어디가 바다이고 여기가 육지인지 도저히 구별이 안되는 것도 그렇고 뒤돌아보면 지나온 변산반도 쪽이 손에 잡힐 듯 이어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몇시간을 달렸는데 뒤를 돌아보면 변산반도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지나온 지점들에서 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듯도 하고요. 동해안은 몇분만 달라도 지나온 곳이 보이지 않지만 여기는 다릅니다. 꼭 우리 인생같다고나 할까요.
20대에는 몰랐는데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시간과 속도가 부질없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인생도 삶도 그런 것 이겠지요. 이념도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조급해지지 말자고 다짐을 해 봅니다. 시간이 지나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워벼렸다고 다짐했었는데 돌아보면 그자리에 있습니다. 어쩌면 더 가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곰소만을 끼고 고창군 줄포쪽에서 바라본 변산반도처럼 손에 잡힐 듯 그렇게 서서 따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 지난 사랑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동지라 불렸던 친구들이 떠오르고 지금은 낡은 듯 들리는 혁명가들의 이름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봅니다. 모든 것을 지워벼렸다고 떠나왔다고 매몰차게 선언하는 이 삼십후반에 말입니다. 모든 것은 소멸이 아닌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생성된다는, 말로만 외쳤던 불변의 진리를 이제사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풍경도 삶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법성포 알지요 영광굴비로 알려진 곳이지요. 앞은 넓은 뻘이고 뒤편으론 조기와 굴비간판으로 최첨단 병풍을 친 듯 합니다. 법성포 북쪽 언덕위에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라는 주제로 공원이 조성중이었습니다. 문화재라는 표시를 알리는 적갈색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언덕을 파고 불교전시관과 간다라 양식의 불상을 벽면에 새긴 부용루라는 건물이 서 있고 그 위로에는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파했다는 인도의 마리난타 존자상과 굴안에 불상을 조각한 탑원을 세운다고 합니다. 조감도를 보니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든 동화사의 불상처럼 그런 식으로 만들 예정인 듯 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서둘러 나왔습니다.
그게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최초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과연 최초라는 것은 어는 시점에서 잡아야 하는 것일까요. 마리난타 존자가 불상과 불교경전을 백제의 한 인물에게 전해준 그 시점일까요. 아니겠지요. 이미 그 이전부터 불교는 다수의 백제 지식인들에게 퍼져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 사상(종교)은 일반 민중들에게도 입소문으로 퍼져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가 승리자의 역사이듯 최초라는 단어도 어쩌면 승리자의 것이 아닐까요.
최초라는 단어로 화장한 풍경을 보고 열받다가 현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표면으로 떠오른 어 떠한 중심적 이론도, 세력도 없는, 그저 다양성만이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더더욱 불안한 것은 그 다양성을 조금이라도 이어줄 어떠한 모습도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 이상한 풍경을 보다가 어쩌면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는 아무도 단정하지 못한다. 보다 나은 세상이 올 수도 있고 섬뜩할지몰라도 어쩌면 더 나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은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 윌러스턴의 말처럼 그 움직임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려면 그 세상을 즐겁게 맞이하려면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그 생각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 겠지요. 진실로 그러하다면 내가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더라도 절망하진 않겠지요. 또 다른 시작에 대한 시도가 있을 것이니까요. 말은 쉽지만 나에게 여전히 버거운 일입니다.
영광은 온통 염전의 고장입니다. 소금창고 너머 비가 올 것을 대비해 간이창고로 소금물을 끌어들이는 염부(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보였습니다. 소금이 가득 담긴 소금포대 하나가 오천원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중국산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차가운 거대한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옛날엔 온통 염전이었는데 지금은 양어장으로 바뀐 곳이 많았습니다. 삼양염전이라는 곳은 골프장을 짓고 있었고요.
염부들은 모두 소작인들처럼 거대 염전의 일부분들을 임대내어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천원이라는 말에 고향의 모습이 떠오르고 과연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 회의가 들었습니다. 고단한 노동의 댓가를 오천원에 판매하는 이 자본주의 아래의 그들의 환경을 보면서 환경이라는 말은 그저 말장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쉽게 내뱉는 오염이니 파괴니하는 말들도 어쩌면 말장난이겠지요. 해안선 내내 폐어구 천지라고 조사장에 기록하다가 어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생각하니 그 마저도 말장난 같아서 한동안 적지 않았습니다.
추신: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저는 그닥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 단어에선 어색함을 입히고 친근감을 달아나게 하는 정서가 있는것 같아서입니다. 선배나 형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