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산문

봄을 시샘하다

빛의 염탐꾼 2008. 8. 24. 06:20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덥다 싶었었는데 그 때문인지 조금은 상쾌하게도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이상고온에 익숙해졌는지 좀 쌀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상과 관련된 매체에서는 이것이 정상이라고들 떠들고 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일까요. 그 동안의 고온에 빨리 적응한 반팔차림들은 어쨌든 조금은 당황한 아침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적응 빠른 사람들의 눈에는 오늘의 기온강화가 때늦은 꽃샘추위로 보일수도 있을 테니까요.

 

기후나 계절은 문학작품에서 종종 정치나 사회정세를 빗대어 표현하는 좋은 소재가 되어 왔지요. 지금의 그쪽 사정은 잘 모르지만 정치와 사회를 향한 직설적인 표현이 목숨과 맞바꿀정도로 엄중하고도 민감한 문제가 되었던 70년대나 80년대에는 특히 그런 작품들이 더러 있었지요. 양성우의 '겨울공화국'이나 딱히 기억에 떠오르는 작품은 없지만 김지하나 황동규의 시 등에도 계절이나 기후가 정치적 발언의 방패막이가 되었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90년대 들어 더이상 '민중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정체성의 혼란에 쌓여있던 시절에 쓰여진 시인 정희성의 역설적인 절규가 다른 작가들의 근엄한 후일담보다 나에게는 더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왔던 기억이 있지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계절과 관련되는 시어에서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고 했던 그 속앓이를 말입니다. 그도 한때는 위에서 말한바와 같은  계절을 가지고 시대를 노래한 시인중의 하나였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지금의 정세도 올해의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러워 보입니다.  10년간 이어져오던 좌파(?)정권에 실물이 난 사람들 눈에는 급우회한 지금의 보수정권의 도래로 인해 사회가  드디어 정상을 찾았다고 보여질 테이고 또 한편에서는 지금의 이 정세가 한순간의 꽃샘추위같은 비정상의 흐름이기를 바라고 있는 듯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단어의 의미조차 헷갈려하는  내가 정세타령을 할 만한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온난화라는 전세계적인 이상고온 속에서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하는 벽조차도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상고온의 현상도 계속되다 보면 그것이 다시 정상이 될 것이고 어쩌면 한때 정상적이었다고 자부했던 현상은  비정상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겠지요. 정상도 비정상도.... 아니 모든 현상도 내가 바라보는 눈이 우선일테지요. 그리고 그 눈은 당연히 나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일 테고요.

 

갑자기 급강하한 기온에 좌충우돌 갈팡질팡한 발걸음, 애꿎은 날씨를 핑계삼아 이제는 내것같지 않는 '문학적 상상'이란 것을 해본 아침이었습니다.   

 

2008년 4월 23일 황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