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눈물의 배후-김태정
십 년 묵이 낡은 책장을 열다가 그만
목구멍이 싸아하니 아파 왔네
아침이슬 1, 어머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수염이 텁수룩한 도이치 사내를 펼쳐 보다가
그만 재채기를 했네
자본론, 실천론, 클라라 체트킨,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묘지
때문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던
네루다 시집 속엔
오래 삭힌 멍처럼 빛바랜 쑥 이파리 한 점
매캐한 이 콧물과 재채기는
먼지 때문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다만 먼지 때문에
바람이 꽃가루를 날려 보내듯
먼지가 울컥, 눈물을 불러일으켰나
청소할 때면 으레 나오던 재치기도
재채기 뒤에 오는 피로도
피로 뒤에 오는 무기력함도
무기력함으로 인한 단절고 해체도
그 쓸쓸함도, 그 황폐함도 다만
먼지 때문이라고 해 두자
먼지보다 소심한 눈물 때문이라도 해 두자
그 사소한 콧물과 눈물과 재치기 뒤에
저토록 수상한 배후가 있었다니
꽃도 십자가도 없는
해묵은 먼지의 무덤을 열어 보다가
그만 눈물이 나왔네
최루가스 마신 듯 매캐한 눈물이
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노작은 홍사용의 호이다. 당선작은 문태준 시인의 어두워지는 순간인데 자기만의 개성이 대단한 시이다. 황동규의 평처럼 언뜻 백석을 생각나게 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지만, 백석의 사물과 사건의 신나는 나열 외에 '기록할 수 없네'라는 반복을 통한 인간 인지한계와 아픔, 역으로 그 한계와 아픔을 기록하는 환희가 '기록된' 작품이다.
그러나 또다른 평자인 김주연이 말한 불필요한 동양적 제스처와 불분명한 시적 자아로 인해 나의 기호에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시를 읽어도 심드렁해진지 오래, 여행시와 명상시 등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들이 주류를 형성하는 요즈음의 시에서 사회와 역사를 읽어내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일테지만 그 욕심을 버릴 수 없기에 더 막막한지도 모른다.
당선자인 문태준을 비롯 고진하, 김태정, 도종환, 이병률, 이재무, 장석남, 조은, 황인숙의 시들이 들어있는 이 시들도 예외는 아닌데 그중 나의 기호에 맞는 한편을 옮겨보았다. 김태정의 '눈물의 배후'는 여느 후일담과 다른 소재로 시대와의 불화를 얘기하고 있다. 눈물의 배후가 오래된 책을 덮고있는 먼지 때문이라는, 그 먼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쾌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개인의 문제이든, 사회의 문제이든 한번쯤 오래된 책을 들쳐보았던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모든 먼지는 자신이 만들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