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염탐꾼 2008. 8. 24. 19:02

우수

 

 

기만의 푸르름을 부르지 마라

마법의 향내 풍기며 다가오는

우수의 바람아

 

철지난 희망를 가슴 깊이 묻으며

쓰디쓴 분노만 되새김질하는

배반의 계절 속에서

허골로 고꾸라져 능선으로 희어진

피빛 붉은 한풀이 키낮은 갈대로 오열하는데

아침 찬거리 하나 마련해 놓지 못한 채

남루한 잠마저 벗겨 버리는 빗물아

 

더이상 울분의 흙을 덮는

가성을 가다듬지 말고

본모습 그대로 칼날의 눈초리를 치켜 올려다오

 

무딘 삽날 다시 갈아

땅 끝까지 눈물의 씨앗을 심기까지는

돋아나는 보리를 보면서

삼사월 가난의 고개를 미리 떨구어야 하는

아비들

백발 성성한 기침소리 끝도 없고

구만리 넘어오는 꿈의 아지랑이

아이들 배고픈 맥박으로 터벅거리며

자욱한 흙먼지에 지워져만 가는데

맘에도 없는 손 내밀며 불어오는

우수의 바람아

 

부황 뜬 천년의 진통을 모른척 하며

봄을 노래하지 마라

 

19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