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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본능

빛의 염탐꾼 2008. 8. 24. 19:41

원초적 본능

-1992년 8월 7일 동성로에서

 

 

사랑도 과하면 피를 보는 것일까

같은 시간 같은 거리 사방은

여러 본능들이 싸우는 처절한 격전장

샤론 스톤에 발기된 일군의 성기들은

그녀의 송곳에 난도질 당하며

침대 위로 정액을 뿌렸고

조국의 허리를 향해 달리던 통일선봉대는

군화발에 짓밟히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팔장 낀 연좌행렬

그 달구어진 조국사랑의 열기는

밤하늘로 퍼져 오르는데

멀찍이서 연기에 질식된 듯 손목을 잡은 쌍쌍들

샤론 스톤의 농염한 침대 속으로 줄지어 빠져들고

'고추 하나가 AIDS...... 특수형 일반형.....'

영화관 화장실 콘돔 자동 판매기

동전 몇 개면 코카인으로 흥분된 그 연기를

누구나 흉내낼 수 있다는 듯

상영을 끝낸 또 몇 쌍들

입술을 달구며 다리를 재촉하고 있는 동성로

방한복보다 두꺼운 진압복을 걸친 전경들의 이마위로

비오듯 흘러내리는 저 땀방울도

원초적 본능으로 빛나는 것일까

얼빠진 사람처럼 이쪽 저쪽을

번갈아 쳐다보는 저녁

전경들 흐린 눈매 속으로

지배자의 농염한 웃음소리 새어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