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떨이를 가다.
개미 이야기
무엇으로 다시 등불을 매달 것인가
북 치고 장구 두드려 시대를 울려보자 달려왔건만
세상이 보란듯이 앞길을 가로막는 오늘
한 손에 두루말이 휴지를 들고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 돌아
노동운동가와 서로의 상한 머리를 올리고
어렵사리 구한 선배의 신혼 방에 집들이를 간다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처럼
밝은 무늬로 감추어도
남루한 흔적 얼룩을 드리우는데
어려운 살림 꾸려가면서도 후배들 공연에 꼭 꼭 와서
굶지 말거라 단 돈 얼마라도 쥐어주고 토큰 몇 꾸러미로
열심히 뛰라는 말 대신하던 형 공연 어땠어요 물으면
나야 문예운동판 떠난 지 오래되어서......
웃으며 돌아서던 형 서로들 빈 가슴에
오랜만에 술잔이 돌고
찌든 세월의 몰골 또한 우리의 몫이 아니던가
시대를 잘못 만났느니 세상 탓이라느니 하는 말은
서로를 향한 욕일 수밖에 없어
가슴 속 깊이 묻어버려야만 하는데
빠른 세월만큼 술잔은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
흐린 눈매를 감추려고 되돌아본 방 한구석
개미들의 잔치가 요란스러워
형, 방에 개미가 끓네 곧 부자 되겠어
서로들 얼굴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20006년 처음와서 기숙사에 살 때 기숙사에서 일하던 아주머니 집을 방문했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데 우연히 길에서 만나 새로 집을 지었다고 하길래.... 하여간 그동안 못가본 것이 가슴 한켠에 자그만 짐으로 남아있었다.... 날씨도 따뜻하고 하여,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가진 것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갈때마다 자꾸만 헤맨다. 오늘이 벌써 4번째 방문인데도 여전히 몇 번을 물어서야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그 집 딸래미가 쌍둥이라서 쌍둥이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일이 쉽게 풀린다. 간날이 장날이라고 그 마을 가게가 문을 닫아서 세제 한 봉지 사가지 못했다...... 작은 짐이 하나 더 생기고 봄이되면 다시 찾아가야 할 듯 하다...
불쑥 찾아들어 또 민폐를 끼쳤다..
손님이 왔다며 남편되는 분이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 마을은 길림시에 속하지만 조금 외곽의 농촌에 위치, 주로 농사에 의존하며 사는 마을이다. 한쪽은 이렇게 새롭게 지은 집들로 가득하고 그 앞으로 큰 도로가 나있다.
역시 새로지은 집들 쪽의 풍경
새로 지은 그들의 새 보금자리. 우리평으로 30여평되는데 두집이 거주하게 되어있어 다른 한쪽은 세를 주고 있단다... 한달에 100원(우리돈으로 2만원)을 받고 있는데 지금의 세입자도 지금 새집을 짓고 있어 곧 있으면 집을 비우게 된단다.
맞은편 쪽의 풍경이다. 옛집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이들 부부도 작년까지 이와같은 옛집에서 살았었는데 2006년 섣달그믐날(20007년 2월)에 그곳을 방문하여 그들 친척들과 만두도 빚고 바이주를 같이 마셨다. 외롭고 멋모를 때였다.
모녀, 내가 아주머니라고 부르니 나이가 몇살 차이 안난다며..... 누나라고 바꿔 불렀다. 이전에 내가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 내 나이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나라도 40넘은 이가 그렇게 부르면 싫을게다. 늙어가는게 달갑지 않는건 세상어디나 다 같으니까.....
딸래미,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일학년인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자전거로 통학을 한단다. 쌍둥이 여동생은 학교가 조금 멀어 학교기숙사에서 사는데 오늘 학교에 가서 집에 없었다. 이놈은 붙임성이 참 좋아서 2007년 봄에 갔을 때 자기가 쓰는 교과서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단어를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부녀지간, 이분은 63년생이고 아주머니 또한 63년 동갑이란다.... 봄,여름,가을에 일이 있으면 시내에서 打工(우리식으로 하면 어른들의 막노동으로 보면 된다)을 하며 농사일을 같이 한다. 이들에게 배분되어 있는 토지는 우리식으로 700여평정도로 2007년에 갔을때 보니 주로 채소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팔고 있었다.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정성을 다해 마련해준 음식들, 내가 한국인이라고 기름을 적게 쓰고 담백하게 요리했다. 정성이 담긴 음식이라 열심히 먹었다. 가난한 살림에서 풍기는 100% 인정을 느낀 하루였다.
비록 그들 집에는 개미가 끓진 않았지만 그들의 살림살이가 하루하루 번창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미같이 열심히 사는 그들이 걱정없이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