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텃밭-생활의 발견

봄날의 서울대공원

빛의 염탐꾼 2011. 4. 21. 19:43

창문을 여니 아무래도 꽃구경이 제격이겠다 싶어 ....  꽃구경을 나갔다.

 

관문체육공원의 벚꽃

 

벚꽃나무 머리 풀어 구름에 얹고

귀를 아프게 여네요

하염없이 떠가네요

부신 햇빛 속 벌떼들 아우성

내 귀 속이 다 타는 듯하네요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시더니

무슨 말씀이었던지

이제야 아네요

세상의 그런 말씀들은 꽃나무 아래 서면

모두 부신 헛말씀이 되는 줄도 이제야 아네요

그 무슨 헛말씀이라도 빌려

멀리 떠메어져 가고 싶은 사람들

벚꽃나무 아래 서보네요

지금 이 봄 어딘가에서

꽃구경 가자고 또 누군가를 조르실 당신

여기 벚꽃나무 꽃잎들이 부서지게 웃으며

다 듣네요

헛말씀 헛마음으로 듣네요

혼자 꽃나무 아래 꽃매나 맞으려네요

달디단 쓰디쓴 그런 말씀

저기 구름이 떠메고 가네요

('꽃구경 가자시더니' 전문, 최정례,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숲/민음사)

 

 양재천의 과천구간에도 봄이왔다

 

목련도 제철이고

 

尺牘揷入春書*

 

꽃가루의 효능은 사월

그 시기에 출시 된 허공은 무겁고 나무들의 몸 안으로 가려움이 옮겨 다닌다

나무들이 흔들려 허공을 긁고 있다

시원해지는 바람.


담장 안으로 꽃잎 지는 소리가 뛰어 든다

걸음이 없는 것들에게

봄 한철이 줄지어 방문한다

잠자던 바람이 일어나는데 봄은 아주 우연한 계절이다

한 철 분주한 허공의 편도

멋모르고 뿌리 내린 것들은 멋모르고 기다리는 일 뿐

오다가다 허공에서 만난 사이

토닥토닥 봄날을 단장 해 본들

咯血의 자리에는 늘 咯血이 피는 일 


꽃들은 늙어서 허공을 살짝 밟아가고 떨어지는 것들은 제 스스로의 목이 시들었기 때문이다


「尺牘- 수두 꽃이 시들어간다고 하나 실은 얼굴이 앞서 시드는 것을 그대도 아는 일. 비벼대는 일이 없으면 꽃의 粉 또한 기침이나 불러 들여 만발할 것을. 手應手答은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일. 意思없이 열리는 마음에 봄날은 그花奢를 뽐낼 뿐이지. 그대를 만나고 수없이 뒤척였으나 깨어나지 않는 잠도 있다는 것을 봄날 꾸벅꾸벅 졸면서 깨닫는다. 그대 봄은 너무 노련해져 향기가 없으니 속히 알아채길.」


무분별 암호들이 적힌 春書는 다 읽을 시기가 있는 법, 때를 놓치면 번져 흐릿해진 문장들이 뚝뚝 지고 만다.

담 너머로 날리는 흰 얼굴이 목 빼어 훔쳐본다

꽃가루의 효능은 허튼 꿈.

 


*척독삽입춘서(尺牘揷入春書) 암호로 씌여진 짧은 쪽지가 첨부된 봄 편지.  

 

해설 이혜원

모든 편지에는 '정 情'이 깃들지만 봄 편지에서 그것은 유난하다. '춘정 春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봄의 정취는 유별나다. 사람들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봄이면 만물이 발정한 것처럼 가렵고 설렌다. 봄날은 또한 덧없이 빨라 한철 분주하다 어느덧 사그라진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자연의 풍광만을 그리며 변죽을 두드리던 봄 편지의 허리춤에 끼어 있는 척독. 꽁꽁 숨겨놓은 남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재미가 이러할 것이다. 꽃보다도 더 빨리 시드는 인생이거늘 짐짓 시치미 떼며 무심을 가장하는 상대방을 점잖게 원망하는 심사가 흥미롭다. 봄날도 그렇지만 춘정을 아로새긴 춘서 春書의 시효는 지극히 짧다. 꽃보다 더 먼저 낙백한 문장의 뒷모습이 소슬하다.  

 

박해람/1968년 강원 강릉 출생. 1998년『문학사상』등단.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그렇다. '꽃가루의 효능은 사월'이다.

 

그리고 또한 '꽃가루의 효능은 허튼 꿈'일까.....

 

설령 허튼꿈에 불과할지라도, 짧은 찰나를 즐길지어다. 그런데 왜 이 양재천의 오리놈들은 '암수 서로 정답'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있나? ㅋㅋㅋ

 

과천양재천과 청계산에서 서울대공원을 거쳐 내려오는 막계천 합류지점

 

서울대공원 입구엔 벚꽃이

 

한창이고

 

'그대 봄은 너무 노련해져 향기가 없으니 속히 알아차리'라는데

 

향기가 없어도 아름다운 걸 어찌하랴....

 

 붓도 잡고 싶고.... 시도 쓰고 싶은....

 

그리고 광장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게 또한 봄날 아니던가?

 

서울대공원의 봄날, 뒤는 청계산

 

봄날이 써서 보낸 '무분별 암호들이 적힌 春書는 다 읽을 시기가 있는 법'이고

 

'때를 놓치면 번져 흐릿해진 문장들이 뚝뚝 지고 만다니'

 

그대 또한 속히 훔쳐 보시라....

 

저수지 너머의 관악산

 

코끼리 열차를 타고 꽃터널을 지나는 사람들

 

내일이라도 비가 오면 후드득 소리없이 지나가 버리는게 봄날이거늘....

 

짧디 짧은게.... 또한 봄날이다.

 

서울대공원의 만발한 벚꽃

 

국립현대미술관도 봄빛으로 물들었다.

 

완연한 춘색..... 색.... 색..... 색

 

나도 붓을 잡고..... 허튼꿈 속으로 풍덩? 해볼까나? ㅋㅋ

 

짧디 짧은게 어디 봄꽃과 봄날뿐이랴?

 

이 화폭도 짧은 봄날을 다 담아낼 수 없고

 

우리들 인생 또한 봄날의 '소풍'같은 것

 

대공원에서 관악산 쪽을 봄

 

대공원에서 청계산 쪽을 봄

 

물빛도 완연한 봄날이다

 

청계산

 

빨갛게 꽃이 피고

 

새들도 노래 부르는 봄날이다.

 

 

인생이 한갖 '봄날의 소풍'에 불과할지라도....

 

또한 처음 찍어보는 셀카처럼 '봄날의 허튼꿈'일지라도.... 이만하면 살 만하지 않는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전문, 천상병)

 

드라마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부근에서 드라마촬영이 한창이다... 오전 7시 50분에 방영하는 mbc아침드라마 '그대는 예쁘다'란다. 주인공 이름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