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혹은 감나무 이야기
봄이면 개나리가, 가을이면 은행잎이 사방을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과천엔 노란빛의 명물이 하나 더 있다. 해마다 7월, 이맘때가 되면 과천의 아파트 단지마다 탐스럽게 익은 노란살구가 달리고 곧이어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은 살구들은 낙화하는 꽃처럼 땅을 노랗게 물들인다. 과천에 처음 둥지를 틀었던 2004년, 술한잔하고 집으로 가는 길, 옛날 생각이 나서 살구를 한봉지 가득 땄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창을 열고 한소리를 한 어느 젊은 주부의 말이 아직까지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보는 거니까 따지 마세요', 그 말에 오기가 발동하여 더 많이 땄던 기억과 너무 많아서 거진반을 버렸던 기억, 물론 오기의 중심엔 유실수의 열매가 관상용이이라고 우기는 젊은 주부에 대한 반감이 컸으리라.
떨어진 살구나무를 보니 어린시절 고향의 살구나무와 감나무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이미 지난 세기의 70년대 후반, 여름방학이 다가올 이쯤이면 아이들은 언제나 풋과일(그렇다고 사과나 배같은 어엿한 종류의 과일이 아닌, 풋살구나 풋개복숭아 등)을 먹어 배탈이 자주 났었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나누어주는 방학생활지침서에 어김없이 풋과일을 먹지 말라는 문장이 깔리고 똑같은 주제의 포스터를 방학숙제로 그려가던 시절, 우리 뒷집에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키가 클 뿐만 아니라 실한 열매를 떨구던 그 살구나무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집 쪽으로 가지를 더 뻗어 툭 하면 우리 집으로 살구를 떨어뜨렸다. 요즘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그놈을 마루에 앉아 은근히 기다렸던 기억과 쿵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그 나무 아래로 달려갔던 기억, 굵은 그놈을 뒷집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약올리듯 더 맛있게 먹었던 기억(무슨 '오성과 한음'도 아니면서-오성 이항복의 이야기는 알아서들 찾아서 읽어보시라!), 그러던 그 살구나무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마 너무 오래되어 고사했거나 뒷집이 새집을 지을 즈음 베어졌을 것이다.
다시 이야기는 살구나무에서 감나무로 옮겨진다. 이 감나무는 반대로 우리집 소유였는데 뒷집 마당으로 더 가지를 뻗어 그 집 마당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을이면 잎이며 붉은 홍시를 떨구었다. 그렇키로서니 감정없는 이 나무가 무슨 죄가 있으리. 문제는 뒷집이 새롭게 양옥을 올리던 즈음,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살구나무가 베어지던 때쯤에 일어났다. 집 뒤가 소방도로 예정지구(소방도로는 아직도 나지 않았다)에 묶여 집을 바짝 앞으로 당겨서 지어야 했으니 뒷집 입장에선 우리집 감나무가 그만 왠수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뒷집의 대문쪽이 직각이 아닌 감나무를 비켜가며 곡선을 그리고있으니 이 감나무는 당연히 눈엣가시..... 그렇다고 남의 소유물을 함부로 벨 수도 없고.... 여기서부터 감나무를 사이에 둔 앞뒷집 사이의 분쟁은 가지를 뻗어가고 바람잘 날 없는 날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엉거주춤 우리집 감나무 가까이로 뒷집이 새 담장을 쌓은것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되니 그 싸움의 발단에는 감나무의 지정학적 위치가 작용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말 못하는 나무에게 무슨 말을 하랴..... '팔아라 말아라', '싸다 비싸다', ' 측량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라' 등 등, 구경꾼과 제삼자들의 이러쿵저러쿵을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같은 세월을 견디며 그 감나무는 다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귀차니즘과 비효율이 반반이 섞인 핑계로 세월은 아무일없이 흘러갔으나 가끔씩 터지는 앞뒷집의 알력에 그 감나무의 상처는 깊어졌으리라. 또한 그 감나무의 상처에 나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향에서 무위도식하던 시절, 그 때도 그 감나무를 사이에 둔 적잖은 싸움이 있었으니까.....
그 감나무, 오란씨라고 부르던 조생종으로 다른 품종보다 몇 주 앞서 홍시를 달던, 한해는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주렁주렁 감을 달고 다음해는 고작 몇 개의 감을 달던, 해거리를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던 그 나무, 지난 설에 형님집에 차례지내러 가서 이제 '뒷집과의 사이도 어느정도 풀어졌으니(뒷집의 1세대가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살던 2세대가 귀향을 해서 살고 있다) 그 나무를 잘라버려도 되지 않겠느냐'고 어머니께 얘기했더니 어머니 왈, '그게 무슨 말 이냐? 그 나무 제작년에 네 형이 베어버린걸 여태 모르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보니 작년부터 그 나무가 보이지 않은 것도 같다. 골목에 떨어진 감 잎도 없었던 것 같고..... 하여간 사이 나쁜 앞뒷집의 경계 부근에서 많은 상처를 겪었던 그 감나무....
하긴 흰 감꽃이 아무리 피어나도 그걸 가지고 감꽃목걸이를 만들어 놀 아이도 없고, 주렁주렁 빨간 홍시가 달려도 따서 입에 넣을 사람도 없고, 그 놈들을 깎아서 곶감을 만들이도 없으니 그 감나무는 서 있었어도 이미 어느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했으리라. 그 감나무, 특히 유실수는 사람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하는 유실수는 그저 인간에게 햇빛이나 가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보니 살구따기를 만류하던 과천의 젊은 주부에게 가졌던 반감의 원인은 술로 인한 것이 아님이 밝혀졌으리라. 하긴 그 주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