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가주망/문학
견습생 마법사-진은영
빛의 염탐꾼
2015. 2. 14. 12:47
대마법사 하느님이 잠깐
외출하시면서
나에게 맡기신 창세기
수리수리 사과나무 서툰 주문에,
자꾸만 복숭아, 복숭아나무
내가 만든 사과 한 알을 따기 위해
이브는 복숭아가 익어가는 나무 그늘에서 기다리다,
잠이 든다
에덴 동산의 시간에 출현한 무릉도원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윌리엄 텔은 아들에게 독화살을 날리는
비인간적인 일에서 해방된다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마치고
왕비는 여전히 질투심에 불탔지만 한 알의 사과를 구
하지 못했네
복숭아나무 아래 떨어지는 분홍 꽃잎, 꽃잎
뉴턴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만유인력 법칙도 상대성 원리도 우주선도 사라진다
맑은 밤, 들에 나가면 목성의 주황색 얼음띠가
예쁜 팔찌처럼 선명하네
그래도 세잔은 한 알의 복숭아로 빛의 마술을 부렸겠지
프로스트는 복숭아를 딴 후에 한 편의 시를 완성했을
거야
트로이 전쟁에 쓰려고 준비해둔 한 알까지
사과의 역사책을 얼른 덮고,
빈 사과 궤짝을 타고 나는 도망가야겠다
하느님이 돌아오시면 화내며 세상을 멸망시키실까
그래도 나는 오늘, 한 그루 말[言]의 복숭아나무를 심
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