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세한도-풍경의 발견

대이리 동굴지대와 기타

빛의 염탐꾼 2015. 2. 26. 12:21

 1.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 탐방(2월 24-25일)

 

 

저 산 이름이 갈매산인데 저 산 중턱에 움푹 들어간 곳이 우리나라 최고의 석회암동굴인 관음굴이 있다.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영구미공개 동굴이다. 왜냐하면 아래까지 읽으면 아시겠다. 난 절대 친절하지 않다. ㅎㅎ

 

사정사정하여 하루 묵었던 곳이다. 겨울이면 탐방객이 뚝 떨어져서 거의 민박을 운영하지 않는단다. 관음굴 바로 아래에 있어서 이름이 관음굴 식당인데 동국대동굴탐사팀을 비롯한 동굴탐사팀이 자주 묵어가는 곳이란다.

 

관음굴 가는길에서 본 폭포. 원래 관음굴에서 내려오는 동굴수는 엄청난 양인데 계속된 가뭄과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쓰기위해 위에서 물을 끌여가기 때문에 수량이 아주 적다.

 

그 유명한 관음굴 이끼폭포인데 여기도 마찬가지이다.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도 이름높던 이끼폭포는 그 옛날의 명성이 사라진 상태이다.

 

관음굴 이끼폭포의 1990년대 모습(상)과  2000년대 이후의 모습(아래) 사진은 청경님의 블러그에서 가져옴

 

막아놓은 철창 사이로 본 관음굴 모습

 

 

역시 엄청난 동굴수가 흘러 나오고 있다.

 

관음굴 내부의 모습.... 동굴폭포와 소 그리고 환선굴과 대금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종유석과 기타 동굴생성물을 볼 수 있는 곳이란다.

 

관음굴 내부모습 가져온 사진들 여기를 클릭

관음굴 내부모습 동영상 여기를 클릭

 

관음굴을 내려와서 본 대이리 동굴지대 전경

 

석회암을 통과한 물들은 이끼를 만들어내는데 유리한 모습인지 곳곳에 이끼가 발달해 있다. 환선굴 가는길 쪽의 풍경

 

오른쪽이 환선굴 쪽에서 내려오는 동굴수이고 왼쪽이 대금굴 쪽에서 내려오은 동굴수이다. 눈으로 보아도 대금굴 쪽 동굴수의 엄청난 수량을 짐직할 수 있다.

 

환선굴 쪽을 보면 나타나는 카르스트 지형의 모습, 중국 계림에 있는 몇개의 봉우리를 갖다 놓은 듯

 

 

대금굴 가는길의 계곡수, 수량도 풍부하고 계곡도 아름답다

 

자연수를 끌여들여 만든 대금굴 입구의 조경시설

 

 

 

여기서 모노레일을 타고 600미터 정도 올라가면 대금굴이 나온다. 참고로 대금굴은 입구를 발견하지 못해 인공적으로 굴을 파서 모노레일로 동굴이 있는 곳까지 들어간다.

 

모노레일의 타고 올라가면서 본 대금굴 주변의 모습

 

올해의 계속된 가뭄으로 수위가 많이 내려갔단다. 평균적으로 호수의 수위는 7미터를 넘고 폭포밑 소의 수위도 5미터가 넘는단다. 일년에 20일정도는 동굴이 물에 잠겨 관람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이 풍부한 동굴이다(이지역 이름이 물골이다). 문화재청과 삼척시의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인원수 제한, 인터넷 예매, 조명시설 최소화 등의 조건을 전제로 2007년에 개방,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원형을 잘 유지한고 있는 듯 하다. 수량이 워낙 풍부하여(물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인듯) 대규모의 석순과 석주가 발달하지 못했으나 커튼형 종유석과 베이컨 시트, 그리고 종유관을 비롯한 기타 동굴생성물은 옆에 있는 환선굴보다 한 수 위인 듯하다. 특히 들어서자 마자 나타나는 엄청난 수량을 자랑하는 8미터의 폭포는 압권이였다. 사진촬영금지지역(찍는다고 해도 조명이 약해 나오지 않는다)이라 사진이 없다. 직접 가보시라.

 

환선굴 가는길쪽에서 만나는 굴피를 얹은 통방아. 대금굴 지역은 물골이고 이쪽 지역의 이름은 골말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절구공이와 절구통

 

 

삼척군 신기면 대이리 이종옥 가옥, 주민이 거주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너와집이 아닐까 싶다. 너와집의 구조 등은 이 사진을 읽어보면 될 듯....

 

 

 

 

사랑방, 도장방, 안방으로 이어지고 맞은편에 외양간이 존재하는 구조이다. 아궁이가 사랑과 안방 쪽 두곳에 있고 특히 입구가 정면이 아닌 측면에 있는 이 형태는 이 근처 도계읍 신리를 중심으로 한 이 지방 특색이란다.

 

 

 

이종옥 가옥 앞에 있는 굴피집, 이 집 역시 사람이 거주하는 국내 유일의 굴피집이다. 식당을 하는 주인장은 국내유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부에서는 지붕교체 외외에 다른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단다. 지금의 굴피도 7년된 것이란다.

 

 

 

 

 

굴피집 내부의 오래된 목재장비들

 

불씨를 보관하는 화티가 있던 자리... 각종 전기장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식당 주방의 모습, 집 내부는 신리를 중심으로 한 이지역 구조와 동일한 듯 하다.

 

2008년 4월에도 이 집에서 동동주를 두 통 먹고 헤롱헤롱 되어서 삼척으로 나갔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도계읍 신리에 있는 이종옥 가옥, 신리에는 2010년 8월과 2011년 1월에 갔더랬다.

 

신리의 또다른 너와집 강봉문 가옥. 이 두집은 사람은 살지 않는다. 신리에는 이 외에도 통방아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너와로 된 쌍물레방아가 있다.

 

2010년 8월 신리 너와집의 모습 여기를 클릭

2011년 1월 신리 너와집의 모습 여기를 클릭

 

 

 

2. 죽서루(2월 25일)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미가 돋보이는 죽서루

 

오십천 물길

 

 

 

관동제일루라는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3. 고향 신선계곡의 모습(2월 21일)

 

 

매미소를 필두로

 

단지소, 이날은 이 마을이 고향인 동창친구와 같이가서 그들이 초등학교 때 뛰놀던 이름 그대로를 들었다.

 

신선계곡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하트 모양의 소를 시작으로 작은 폭포와 소가 이어지는 구간이다. 울진군에서 계곡을 가로질러 용소를 볼 수 있는 구름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구름다리는 위로 몇 개가 더 있다.

 

 

이 구간은 맞은편 절벽에서 내려다보면 삼단 폭포와 선녀탕이 나타나는 곳이다.

 

2010년 위험을 무릎쓰고 절벽으로 내려가서 찍은 삼단폭과 선녀탕의 모습이다.

 

2010년 8월 신선계곡 여기를 클릭

2011년 4월 신선계곡 여기를 클릭

 

용소 구름다리

 

이 지역 동창들의 무용담에 자주 등장하는 용소, 여기에서 여름날 다이빙을 자주 했단다.

 

 

신선계곡의 멋진 바위들

 

 

오랜만에 세수 한 판... ㅎㅎ

 

 

 

여기가 신선계곡이 끝나는 지점, 두 물길이 합쳐진다고 해서 합수목이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화전민들의 흔적인 독골(구한말 의병장 신돌석 유적이기도 하다)이 나오고 왼쪽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백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기묘하게 생긴 이 폭포는 내 맘대로 '몸부림 사랑폭포'라고 명명....

 

내려오면서 본 계곡 풍경

 

신선계곡 지계곡에서 내려오는 아담한 폭포와 호박소, 폭포의 규모에 비해 엄청난 깊이를 자랑하는 소다. 이 작은 폭포를 두구 블러그 '연하고질'님은 지계곡이 본류를 만나면서 예의를 갖춘다고 표현하였다. 알고보면 내 고향이지만 삼단폭으로 이어지는 선녀탕 사진은 연하고질님의 블러그에 보고서 나도 어디인가 싶어 알아낸 곳이다.

 

 

 

4, 고향 이모저모

 

 

18일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구주령의 눈보라. 한마디로 식겁했다.

 

 

내가 좋아하는 메밀묵, 올해도 맛있게 먹었다.

 

 

22일 서울과 대구에서 온 외사촌들과 함께 간 후포 등기산에서 본 동해의 푸른빛

 

 

줄을 서면서까지 사먹는 대게빵이란다.

 

 

 

5. 재미삼아 찍어온 졸업앨범의 사진들

 

 

초등학교, 내 얼굴이 맘에 안 들었는지 장난을 많이 쳐 놓았군.  ㅎㅎ

 

 

 

 

중학교 졸업사진, 이때까지도 제법 통통했고, 초등학교 때는 한 때 별명이 돼지였던 적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ㅎㅎ

 

 

 

 

 

고등학교, 지금의 모습과 많이 유사해진 듯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이자 담임이었던 황홍기 선생님, 같은 성씨에다가 하필 고향이 온정이라서(그것도 어릴 때 떠난 고향이 아닌 지금도 부모님이 고향에 살아계신) 공부 안한다고 엄청 맞았었다(사실 고등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나름 수재 소리를 들었다. ㅎㅎ). 방학 때 우리집을 직접 방문해서도 여전히 공부 안한다고 걱정해주던 모습과 2학년 올라갈 때 교무실로 직접 불러 국어참고서를 건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지난 얘기라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나에게 있어서 거의 묻히 과거나 마찬가지이다.

 

또 한 명의 2학년 때 국어를 담당했던 도광의 선생님, 이분이 시인이여서 그런지 모교에서 안도현과 서정윤을 비롯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된 듯 하다. 수업시간에 국어 이론수업보다 자신과 기타 유명시인들의 시를 더 많이 낭송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모습.... 일찍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3학년 때부터 문예운동을 한다고 밖으로 뛰쳐나와 별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단체사진에도 없다. 뭐에 그리 바빠서인지 겨우 시간을 내어서 개인사진을 찍으로 어느 사진관에 갔던 기억....

 

 

 

고향에 고색이 묻어나는 문서들이 있어 재미삼아 찍어봤다. 땅문서, 묘지신고증 등

 

 

 

22일 가본 외골의 진달래폭포, 가뭄으로 물이 거의 말랐다. 이 이름도 내 맘대로 명명한 것.....

 

아담한 저수지와 오리나무 군락, 외골은 서하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유독 습지가 많고 곳곳에서 물이 솟아나온다.

 

소태1리 절경지인 세심지 근처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이런 모양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