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메밀꽃 필 무렵
빛의 염탐꾼
2015. 9. 11. 11:03
메밀꽃 필 무렵
2015. 9. 7
출생의 비밀이라도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저 강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을까
왼손잡이에 힘깨나 타고 났더라면
물가의 저 바위처럼 더 아무렇지 않게 박힐 수 있었을까
따가운 햇살 아래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은 지천으로 피어나고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는 세월이면 어떻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월이면 또 어떠리
그저
얼금뱅이 장돌뱅이 되어
오늘은 봉평장 내일은 진부장
개망초꽃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도 좋을 테지만
삶의 모든 비밀들은 그 많던 물레방아간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본의 꽃소금에 절여져 풀이 죽은 이번 생은
오일장 날짜만큼이나 어긋나기만 해서
파장도 한참 지난
동이도 허생원도 없고 농치고 수작거는 이도
받아줄 이도 없는 봉평장 막걸리집에서
타는 목구멍 속으로 막걸리를 부으며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가만가만 외쳐보지만 동화 속의 늑대는
왜 하필 세 번째에 나타나는 걸까요 끝내
늑대는 오지 않고 내 마음 속
양치기 소년도 금새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