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긁다
빛의 염탐꾼
2018. 10. 22. 22:32
긁다
털갈이 하는 짐승의 손톱이 빠지듯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나무들처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나무들처럼
수학여행에서 사온 손녀의 효자손이 되어
온 몸에 피가 나도록
온 몸이 가렵다고요. 피부는 눈치가 백단입니다. 한 성깔 하지요. 아토피*이군요.
부부싸움 하듯
가장 아픈 곳을
연필을 쥐고 벽을 향해 돌진하는
두세 돌 지난 애기의 고사리 손으로
자해 공갈 협박을 하듯
긁는다는 것은 상처와 상처끼리의 투쟁, 왜 아니겠어요. 피부도 엄연히 광장의 기억을 갖고 있어요.
갈퀴로 지푸라기를 무드가 카드를 수저가 누룽지를 싸가지가 바가지를 권력이 재물을 명예가 탐욕을 비굴한 곳을 뼈 속까지 가려운 곳을 한 때 내 살이고자 했던, 아니 내 살이었던 꿈의 조각들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더러운 성질머리를 기묘하고 특이한 체질을 알 수 없고 비정상적인 성격을 긁지 말고 참아라 입 발린 개소리만 하는 돌팔이 세력들을 시대와 광장을 불화와 우울과 욕구불만과 미친 세계관을 빡 빡,
단풍 들고 낙엽 지듯
새순이 돋고 꽃이 피듯
아프게 아프게
긁어부스럼이 되도록
* 아토피는 그리스어로 “기묘한, 부적절한, 특이한, 이상한, 알 수 없는, 비정상적인 반응, 뜻을 알 수 없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