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염탐꾼 2018. 12. 16. 15:33

까치밥

    

 

요즘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며칠 전에는 지인 몇으로부터

수동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교회에 다니는 앞집 누나가

찾아와서 선지자요 절대자요 자주 설법을 펼치지만

나는 그걸 외롭다로 듣고 무섭다로 읽은지 이미 오래다

오래전에 전도하는 한 무리의 교인들이 찾아와서 읽어보라며

책 한권을 놓고 갔는데 제목부터가 지옥행과 천국행을

짬뽕한 것이여서 그 후로 통닭을 시킬 때 후라이드반 양념반을

외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십년 전에 묵시론적 길에서

만난 도를 아십니까라는 무리에 이끌려 간 적이 있는데

마지막에 기도에 드는 비용을 내라고 하는 바람에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 미술운동을 하던 후배가

그 무리에 섞여 있었는데 돌아서는 내 등에 대고

내 발로 다시 찾아올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당신은 곧 죽을 거라는 말로 들렸다 그 즈음

다단계에 끌려갔다 온 선배는 자신을 거짓말로

꼬드겼던 선배들 욕을 지금도 하고 그러고 보니

운동권의 80년대식 의식화학습은 다단계를 꼭 빼닮았다

이제는 노동자농민의 노자만 들어도 멀리 토굴같은 데로

숨고 싶은데 봄에 토굴을 찾아 여기까지 왔던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없다 사드반대투쟁을 하는 몇 안 되는

지인들이 입은 붉은 조끼가 가끔 눈에 아른거리고

며칠 전에는 꽃다운 나이에 젊은이가 죽어 나갔다는데도

내 발은 공중에 매달려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하늘은 그저 배후일 뿐

아득히 멀고

찾아온다는 놈이

까치면 어떻고 까마귀면 어떻고 그도 저도 아니고

참새나 멧새면 또 어떠하오리 만은 구순이 가까운

어머니는 봄이 오면 여전히 읍내에서 펼쳐지는 돌팔이약장사들의

공연에 갈 것이고 그들이 데리고 온다던 모든 세상 이야기는

지금까지 대부분 풍문이나 낭설이였다 오랜 습관과

사랑과 집착이 붙들어 맨 이 절대적 맹목이여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이 수동성의 세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