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미역국
빛의 염탐꾼
2019. 1. 3. 17:41
미역국
-단양에서
우리는 서로 미끄러지는 사이가 되어서
꾸역꾸역 만나 덕담을 나누고 미역국을 먹는다
어머니 미수를 위해 사대가 모여 앉은 단양
도담삼봉의 유치한 스토리텔링에 위선적인 박장대소로
답하고 뻥 뚫린 석문을 액자 삼아 단체가족사진을 한 판
박고 사인암과 구담봉 옥순봉을 휭하니 나며 들며
먼발치로 겸재식 진경산수를 구경하고 하늘 높은
유리전망대에 올라 굽이치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세월의 아찔함에 오금을 저려보기도 한다
손자를 낳았다고 꾸어온 쌀 몇 되를 주고 사와서
끓인 할머니의 미역국을 보고 차라리 쌀밥을 실컷
먹었으면 싶었다는 어머니의 속마음처럼
태어남과 미끄러짐은 동시에 있고
피는 어쩌면 같은 미역국을 먹었다는 뜻인지도 몰라서
(그래, 물보다 진한 것은 확실하네)
진한 것이 오래되면 탁한 것이 되는 건가
팔경은 저마다 홀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감당하고
우뚝 서 있고 온달과 평강의 유치짬뽕 사랑이야기가
지극정성의 물이 되어 휘 휘 돌아
붉고도 환한 절벽을 만드는데
후대의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나는
그 모든 풍경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얼어붙은 남한강을 쳐다보며 자주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