線을 지우다
線을 지우다
내 마음의 점이지대에는 회색분자와 기회주의자들이 모여 산다
내가 善하고 柔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이유는 그들로부터 빚 입은 바 크다
그 지대의 공기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온통 뿌옇고 흐린데다가 모두 침침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것을 소리 소문에 의지하고 있다
자주 시끄러우나 시시때때 생각이 바뀌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결정유보 상태의 미궁에 빠져 조용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지대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일기예보를 극도로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남부지방 혹은 중부지방에 비나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도 사람들은 내어놓은 빨래를 걷지 않았고 결과는 언제나 오거나 안 오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내려도 안 내려도 불평하는 이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해안과 내륙, 농촌과 도시 그 어디에도 제외되지도 포함되지도 않는 혹은 제외되거나 포함되는,
무엇이든 섞고 섞이는 것을 좋아해서 식단은 늘 풍성하나 자주 잡탕이 돼서 먹고 나서는 니 맛도 내 맛도 없다고 모두 투덜거리기 일쑤인 이 지대의
언어에는 바로 가든 모로 가든 중간만 가면 된다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선거와 같은 정치적 경향에 있어서도 이 지대만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는데 사전조사와 결과간의 신뢰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낮고 오차범위는 한없이 높다는 것 아이러니 한 건 투표율은 비교적 높다는데 있다
어제 밤엔 발전소건설 문제로 반대파와 찬성파의 충돌이 있었는데 그 몇 배의 사람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그저 구경했다고 한다
열목어의 남방한계선이라는 봉화 백천계곡에 가 본 적이 있다
그 숲에도 난대림과 온대림과 냉대림은 섞여 있었고 내 마음의 점이지대에도 상록활엽수와 낙엽침엽수가 혼재해서 자라고 있다
모든 경계는 가시거리 제로의 허상이고 모든 한계선은 충돌선이자 오리무중의 안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