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염탐꾼 2019. 2. 15. 15:42

이름

    


 

개새끼가 강아지가 되기까지는 그저

한줌의 희망과 욕망덩어리면 충분하다

이월의 천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 버들강아지

겨울추위가 얼마나 지긋지긋 했으면 저토록

사랑스럽고 복슬복슬한 이름을 가졌을까 이름에는

당사자보다 작명자의 희망과 욕심이 드러나기 마련이여서

할아버지가 유명한 작명가에게서 지어왔다는 내 이름을

나는 이십대 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스스로 폐기했다

그 이름은 완전하다와 별을 뜻하는 한자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수동적이고 유약한 어감이 그 시절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식민지봉건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북쪽의 어느 분의 이름과 많이 닮았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살고 싶다던 노천명의 친일행위가

하늘의 뜻 이였는지 아닌지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언제부터인가 김병연보다는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더

맘에 들고 이름 없는 폐사지나 생몰연대가 불분명한

어떤 무명씨로 시작되는 역사에 왠지 모르게 정이 가고

전시회장에 가면 무제가 걸린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경향이 생겼다 산천에 피고 지는

이름 없는 들꽃에도 노동해방의 꿈이 영그는지 아닌지

모든 몸짓은 이름을 불러주어야 비로소 꽃이 되는지

아닌지는 물론 지금도 잘 모르지만 모든 名詞

名士가 되고 싶은 거대한 희망사항과 욕망덩어리

개명신청이 무조건 받아들여진다는

후남이 종말이 말선이 말자 등등

남아선호사상에 깔린 그 많던 어릴 적 내 친구들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꺼지지 않은 헛된 욕망만이

어떤 이름들에 실려 꽃샘바람으로 불어오는데

스물 몇 살부터 스스로 지어 부르기 시작한

진정성이니 뜨거움이니 하는 뜻을 가진

내 이름에서 풍기는 혁명적 낭만주의의 냄새가

그 때나 지금이나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여서

산책길에서 만나는 묘지 앞의 수많은 비석이

호랑이가죽을 덮어쓴 것처럼 보였다

 

 

* 김춘수의 시 과 노동가요의 가사가 차용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