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염탐꾼 2019. 5. 2. 15:17

寒食

 

 

 

가스렌지를 켰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하필이면

오늘 가스가 다 떨어진 모양이다

산불이 번진 속초에서 제일 먼저

실행한 조치가 도시가스 차단이라지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건지

병 주고 약 주는 건지

청명과 한식과 식목일은 왜 나란히 붙어 다니는건가요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찬음식을 먹어야 되겠어요

寒食은 한식인가요? 양식인가요? 혹시 중식? 일식?

이도 저도 아닌 퓨전 짬뽕입니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반대로

까마귀가 길조 까치가 흉조라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치 간헐적 단식을 해야 겠어요 하긴

일어서는 걸 힘들어하는 우리 모친은

가스렌지도 전자렌지도 켜는 게 어려워서 늘 찬밥신세

무덤 속으로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혼잣말을 자주 하지요

뒤뜰에서 우는 새가 까치인지 까마귀인지 도통 모르겠어요

오늘도 정치인들은 조국과 민족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줄지어 현충원 참배를 가겠지요

나는 오늘

남의 외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금쪽같은 조상들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성묘는 절대 가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