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절벽
빛의 염탐꾼
2019. 5. 2. 17:45
절벽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결핍과 욕구불만의 덩어리였다
여자들은 십중팔구 자기 가슴이
절벽이라서 맘에 안 든다고 하고
내 뒤통수는 절벽이다 못해 오버행으로
깊이 파여 있어 어느 관상쟁이가 보고서
단명할 운명이라 했는데 다행히 아직 살아있다
언젠가 수많은 삼존불과 마애불을 보기 위해
경주 남산을 오르며
저토록 높고 깎아지른 바위를
불국토로 만들어낸 신라인들의
한과 바램의 크기와 무게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아찔한 바위절벽에 밧줄을 걸고
석청과 제비집을 따는 이들을 보여주는
다큐를 보았는데 화면 속에서
젊은 시절 몇 번이나 뒷산 바위에 올랐으나
새끼들이 눈에 밟혀 끝내 다시 내려왔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와서
잠시 현기증이 났었다
한 마리 부엉이나 올빼미가 되어
스스로 뛰어내리는 혹은
떠밀려서
추락하는
생은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바위절벽을 매달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내 뒤통수처럼 생긴 곳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수많은 바위쟁이들 뒤로
쏟아지는 폭포수
그 바위 틈새에도 뿌리 내리는
한 그루 노송이 있어
꿋꿋이 버티고 선 거대한
결핍과 욕구불만의 덩어리가
부처가 되고 석가모니가 되고 가끔
믿음과 열정의 거대한 물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