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텃밭-생활의 발견

4월 백암산의 눈, 왕피천 용소 외

빛의 염탐꾼 2019. 5. 9. 21:20

4월 3일 ...... 산책길 수질정화사업소에서 바라본 서화산



4월 5일 ..... 바야흐로 도화의 계절이다. 복사꽃 아래를 거닐다 보니






사월엔 우리 모두 무릉으로 떠나요
수컷들은 삼삼오오
컴퓨터게임 도원결의에 모여
전장에 나서는 사람들처럼
결의에 찬 의형제를 맺고
온라인 채팅방 복사꽃 아래에서
처음으로 만난 남녀는
마음에 없어도 뭉쳐야 산다
바로 연인관계를 맺고 잠자리를 하지요

     

온몸에 열꽃이 피어 며칠째 누워 있어요
도화살 그거 역마살보다 무서운 거라는데
더 이상 도발할 기운도
핑계거리도 남아 있지 않아요
꿈에 자꾸 도원이 어른거려요
도원은 여기서 얼마를 가야 하나요?
즙이 줄 줄 흐르는 잘 여문 복숭아 한 입
물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고작 복숭아라니?
죽은 도연명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구나 얘야
어쨌든 그게 하늘의 뜻이라면
천도를 줄까? 황도를 줄까?


桃를 아십니까?


발정의 색깔은 분명 연분홍빛
정액냄새는 하얗고 누런 밤꽃이 아니라
복숭아꽃에서 난다는 것에
아담과 이브 앞에 서 있었던 나무가
사과나무가 아니라는데 나머지 생을 걸어 볼까요?
내일 비록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내 무덤가에
한그루 복숭아나무를 심겠어요

     

흐드러진
복숭아
복숭아
복숭아
나무 아래

     

나비와 벌들이 꿀을 빨고
나는 잠든 애인의 젖을 빨았다









4월 9일 ..... 아주 가끔씩 가는 산길로 산책을 가는데 제철나물인 머위가 눈에 띈다. 조금 뜯어서 먹어봐야지 하며 뜯다보니 주변으로 머위가 지천이다. 세월 모르고 뜯다보니 어마무시한 양이 되었다. 내가 토끼가 아닌 관계로 감당불감당 인 듯 하여 돌아오는 길에 바로 온천장 주변 아는 노점 아주머니에게 갖다줬더니 1.5kg가 넘는단다. 요즘 시세(나물 들어오는 가격, 작년엔 칠천원했는데 내렸단다)가 1kg에 오천원인데 만원을 주겠단다. 그냥 7,500원 달라니까 어머니랑 자장면 사먹으라고 기어코 만원을 주신다. 절약정신 발동하여 자장면 안 사먹고 그냥 호떡 한봉지 사들고 내려왔다.


이 맘때는 묵정밭에 며칠에 한 번씩은 가야 한다. 아무리 묵정밭이라도 사람과의 인연을 가졌던 그곳에는 두릅같은 나물들이 이 맘때면 어김없이 올라온다. 고사리가 조금 올라오는 곳도 들렀는데 지난주 한식성묘 시즌에 누군가가 이미 꺾어 간 듯 하고 우리집 오래된 묵정밭에 서울에서 요양삼아 내려온 분(지금은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어 밭에 심어놓은 온갖 과실수와 고사리 엄나무 등이 관리가 안 되어 엉망이다)이 심어놓은 고사리가 몇 개 올라오고 있어서 조금 꺾어왔다.



4월 10일 ..... 밤새 꽤 많은 양의 눈이 초록의 새순 위를 덮어 강원도 산간내륙의 풍경이 되었다. 사월 십일에 내린 함박눈, 올해는 일월 하순경에 매화가 피더니 한겨울 십이월과 일이월에도 좀처럼 보지 못했던 눈이 삼사월에 자주 내린다. 내마음 같이 참으로 모를 날씨다. 갑자기

'눈이 내린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는 구절이 떠올라서 검색해보니 '눈이 내린'이 아니라 '꽃이 지는'이란다. 조지훈의 '낙화'에 나오는.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구절이 있는 김광균의 '설야'라는 시에 등장하는 구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눈이 내리고 꽃도 지고..... 설상가상인가? 금상첨화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화상첨설?이니

따블로 대성통곡을 해야겠다.




4월 11일 ..... 배구의 기술 중에 속공과 시간차공격이라는게 있다. 20세기 70년대(?)까지는 없던 기술인데 아마도 일본(?)에서 처음 개발하여 지금은 배구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공격기술이 되었다. 말그대로 속공은 수비수가 수비대형을 갖추기도 전에 하는 빠른공격이고 시간차공격은 공격수와 세터가 공격시간을 요리조리 조절하여 상대를 속이는 공격이다. 이 공격 앞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수비수들도 당황하게 된다. 올해의 봄날씨를 보면 배구의 속공과 시간차를 닮았다. 따뜻했던 겨울 때문에 일찍 봄이 찾아온 줄 알았더니 꽃샘추위가 사월에도 이어져 떨어지는 꽃잎 위로 폭설을 퍼붓고 우리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각설하고 일어나 먼산을 보니 여기가 무슨 네팔(안가봤지만)같은 4월 고산지대 풍경을 보여주기에 지난 가을 이후 오르지 않았던 산을 올랐다. 눈위로 떨어진 꽃잎들, 지대를 높일수록 쌓인 눈의 양은 발목을 넘어서고 700고지를 넘어서자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도 지워지고(올라갈 때 내려오던 젊은이를 한 명 보았는데 그도 그쯤에서 돌아섰나 보다) 계속 전진했으나 신발이 너무 젖고 이러다가 조난당할 수도 있을 듯하여 정상이 바라보이는 능선(980고지 정도)에서 뒤돌아 하산했다.


눈 위에 떨어진 진달래가 화전인 듯 보여서 한웅큼 집어 먹었더니 입안이 얼얼하였다.
























4월 20일 - 21일 ..... 울산에서 놀다



5월 2일 ..... 오랜만에 초고



절벽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결핍과 욕구불만의 덩어리였다
여자들은 십중팔구 자기 가슴이
절벽이라서 맘에 안 든다고 하고
내 뒤통수는 절벽이다 못해 오버행으로
깊이 파여 있어 어느 관상쟁이가 보고서
단명할 운명이라 했는데 다행히 아직 살아있다
언젠가 수많은 삼존불과 마애불을 보기 위해
경주 남산을 오르며
저토록 높고 깎아지른 바위를
불국토로 만들어낸 신라인들의
한과 바램의 크기와 무게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아찔한 바위절벽에 밧줄을 걸고
석청과 제비집을 따는 이들을 보여주는
다큐를 보았는데 화면 속에서
젊은 시절 몇 번이나 뒷산 바위에 올랐으나
새끼들이 눈에 밟혀 끝내 다시 내려왔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와서
잠시 현기증이 났었다
한 마리 부엉이나 올빼미가 되어
스스로 뛰어내리는 혹은
떠밀려서
추락하는
생은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바위절벽을 매달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고
내 뒤통수처럼 생긴 곳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수많은 바위쟁이들 뒤로
쏟아지는 폭포수
그 바위 틈새에도 뿌리 내리는
한 그루 노송이 있어
꿋꿋이 버티고 선 거대한
결핍과 욕구불만의 덩어리가
부처가 되고 석가모니가 되고 가끔
믿음과 열정의 거대한 물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사진은 오늘 산책길에 본 백암산과 할미꽃 군락




5월 3일 ..... 유붕자원방래



5월 4일 ..... 서울에서 오지 울진을 찾아온 지인을 이끌고 뚜벅이는 가기 힘든 울진 최고의 오지로 들어가다.


이보다 더 오지는 없다.


길을 잘못 들어 첨벙첨벙 왕피천 본류를 헤집고 찾아간 금방이라도 이무기가 솟구쳐 오를 듯한 왕피천 용소, 2004-5년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협력활동가 시절, 영양군 수비면 오무에서 울진군 근남면 굴구지마을 용소까지 내려왔던 두번의 기억을 더듬어 드디어 십몇년 만에 용소에 다시 발을 담그고


내친김에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오백살 금강소나무를 알현하고 황장봉계표석과 불영계곡까지 둘러보다.























5월 5일 ..... 후배와 함께 월송정, 월송정 사구공원, 해월헌






5월 8일 ..... 애기똥풀 잎을 살짝 뜯어 내었더니 정말로 진노란 액이 방울져 맺힌다. 하긴 애기똥풀과 비슷한 노란꽃에 잎에서 붉은 액이 나온다고 해서 약간 섬뜩한 이름이 붙은 피나물도 있긴 하다. 그러고보면 순교하면서 뿌렸다는 이차돈의 피는 진짜로 흰색이었을지도.....


근 육개월만에 백암산 정상과 흰바위를 찍고 백암산성터와 백암폭포로 내려왔다. 온통 흰색의 이름으로 도배한 산 여기저기 흰 빛깔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시인 정희성의 시 '그리움 가는 길 어드메쯤'의 한 구절처럼 '더러는 피고 있는 진달래'는 끝물을 향하고 철쭉이 한창이다. 내려오는 길 칠부능선쯤에서 높은 산속에만 자생하는 얼레지와 우산나물(일명 꼬깔)을 만났다. 어디선가 고급나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듯도 하여 딱 한번 먹을 양을 따 왔다.



오월


 

     아카시아 이팝 때죽 찔레 산딸 이차돈의 피를 뿌렸나 꽃들은 하나같이 희기만 해서 오월은 날마다 말 못할 슬픔을 안고 떠난 자의 기일 같고 할머니 초상날 초등학생 눈매 위로 아른거리는 모시적삼과 삼베 빛으로 세상의 모든 상복과 소복 빛으로 무명천이 드리워진 할머니 빈소 위로 삼시새끼 차려지던 고봉쌀밥으로 꽃은 피어나는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내 몸 가득 흰 꽃을 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