桑
뽕잎은 어릴 적 나의 일용할 양식
오뉴월 양잠철이 되면 안방 한구석에
시렁을 얹고 누에를 키웠는데요
어린누에 애벌레들이 뽕잎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동안
어린 나는 엄마젖을 물뽕이라도 되는 양
쪽쪽 빨아먹고 쌔근쌔근 잠이 들었어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허물을 벗는 누에(蠶)처럼
그 때 나도 자주 변태와 우화를 꿈꿨을까
꿈속에서 걸었던 그 모든 길은 비단길 이였을까
누에들이 자라서 뽕잎이 모자랄 때면
동네 아낙들은 젖먹이 애기들을 재워놓고
산을 넘어 산뽕을 따러 갔다는데
그런 날 밤이면 어김없이
꿈속까지 들려오던
뽕 따러 가세 뽕 따러 가세
누에가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들고
그 고치를 뽑아 다시 실을 만드는데
그게 비단이 된다는 것은
고치 속에서 나온 것이 번데기라는 것은
뽕이라는 영화를 볼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어요
어쩌면 지금은 뽕브라 뽕망치의 시절
뽕나무 밭도 푸른 바다도 보이지 않고
어깨에 가슴에 발밑에 온통 부글거리는 거품
상스러운 소리 그만 하라고요
뽕잎 먹고 자라난 상놈 태생이 어디 가겠어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맞아도 맞아도 아프지 않아요
전 지금도 번데기를 못 먹어요
좀 징그럽게 생겨서 그렇기도 하지만
누에들이 엄마 젖을 뺏어 먹을지도 모른다는
어린 시절의 터무니없는 생각 때문인지 몰라요
번데기를 그냥 두면 나방이 된다지요
왜 나는 누에나방이 되어 날아가는 번데기를
여태까지 한 놈도 못 본 걸까요
이런 벌레만도 못한 놈아
그건 네가 잠이 많아서 그렇단다
모든 벌레들은 네가 잠든 사이에 나방이 되어 날아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