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텃밭
빛의 염탐꾼
2019. 6. 4. 16:11
텃밭
일상은 날마다 돌보지 않으면 순식간에 황폐해지기 마련이라서
이 좁은 울타리 안에서
무사안일 살아남으려면
올라오는 잡생각은 그날그날 바로 뽑아버려야 해요
멧새는 아침마다 내 창가에서
자명종처럼 울어요
떠날 수 없으면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텃밭을 한 바퀴 돌라고
요즘은
밖에서 소변을 참았다가 텃밭에 와서 누지요
이곳에서는 맘껏 텃세를 부려도 아무도 몰라줘요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사방 이 미터 나와바리 안에서
맘껏 꿈을 꾸어도 좋아요
그렇지만 그 꿈을 실행에 옮기지는 마세요
언제부터인가
철새가 텃새보다 맑아 보였어요
탈색된 것들보다 변색된 것들이 깨끗해 보였어요
현명의 다른 말이 보수라는데
무식의 다른 말이 진보라는데
자기 집 앞에서 오십 점 먹고 들어가는 똥개처럼
알고 보면 오십보백보
돈과 권력의 msg가 뿌려지면
바로 잡탕이 되긴 마찬가진걸요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그렇다면 텃밭 한 평 가꾸어 보세요
상추 가지 오이 고추 온갖 엽채류로
경계 지어진 이곳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그럭저럭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유일한 장소
단 잡초를 뽑아내고
물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요
죽기 전에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여 썩어가는
변함없는 오늘
그 나물에 그 밥
오늘도 나는
텃밭에
물을 주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