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염탐꾼 2019. 7. 11. 15:59

포도주

    


 

죽은 아내의 첫 번째 기일을 위해 술을 빚었다


여보, 젖과 꿀로는 뭔가 부족해요 첫째의 젖을 떼기 위해 젖꼭지에 아까징끼를 바르던 아내가 말했다 전생의 업을 다 씻으려면 피 한 사발이 필요해요 그걸 둘째가 빨면 어떡하라고? 차라리 포도주를 바르면 어때? 동물원에 간 첫째는 원숭이 엉덩이를 보고 외쳤다

 

새빨간 거짓말*

 

그 말이 내게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들렸다


동백이 피어났다가 천천히 지고 푸른 잎들은 빨갛게 물들었다 금세 낙하했다 나의 이빨은 설치류처럼 계속 자라났고 적십자 헌혈의 집 앞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고 모기떼만 극성이었다


죽은 자들은 기일에 맞춰 일곱명씩 짝을 지어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보름달이 환한 자정이면 무덤가에서 절을 올리고 음복으로 선지덩어리를 씹어먹었다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새 애인은 나보다 스무 살 하고도 또 네 살 더 아래

 

이십사도의 피를 드릴까요? 사십팔도의 피를 드릴까요?


나는 밤마다 송곳니를 그녀의 목에 박고 새 피를 뽑아내어 붉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았다


붉은 노을 아래서 그녀와 신접살림을 차리기까지 일 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목에 아까징끼를 바르지 않은 것을 늘 하루가 지나서야 후회했다

  


  

* 김행숙, '옥도정기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