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염탐꾼 2019. 8. 23. 12:11

빗소리

    


 

자정 너머의 소리이다

정규방송 끝난 티브에서 흘러나오는

빗살무늬토기에 빗금 긋는 소리이다

개똥도 약에 쓸려니 안 보이네

그 곁에 모로 누워 내뱉는

어머니의 잠꼬대 소리이다

 

파티 끝낸 왕자와 공주들이 턱시도와 드레스를 벗는 소리이다

반짝거리는 유리구두와 황금빛 호박마차가 사라지는 소리이다

조상귀신 다녀가도록 모든 문을 열어라

祭主도 없이 치르는 기제사 상에서 울려 나오는

축문 외는 소리이다

장마철 하릴없는 스님들의 공염불 소리이다

초등학교 월요조례 국민의례 뒤로 끝도 없이 이어지던

교장선생님의 훈시 소리이다

 

우산 챙겨서 큰길가로 나가 보거라

열녀문 빗장 거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이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려서 뭔 소용이래

낮고 긴 욕에 섞인 나의 짜증 소리이다

가화만사성이다 군사부일체다

새벽녘 오랜 뒤척거림 끝으로 불쑥 찾아오는

아버지의 술주정 소리이다

얼어죽을 도덕군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술병앓는 소리이다

방안 가득 무르고 썩어가는 고추를 늘어놓고

혀를 차는 어머니의 탄식소리이다


그러다가 문득

각개격파의 기동전으로

반길 수도 내칠 수도 없이

게릴라성 소나기처럼 마당을 쓸어내리는

참 때맞춰 내리네 단비야 단비

 

가뭄 끝 고추밭 위로 내리는

봇도랑으로 흘러드는 논물소리

오랜 기다림 끝에 이제 그만 뒤를 닦으려다

기운이 다시 와서 앉은 변기에서

내리 꽂는

비풍초칠똥팔삼

어떤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