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단풍
빛의 염탐꾼
2019. 10. 23. 15:22
단풍
붉디 붉은 가을 하늘 아래
초강성 선동문구로 가득찬
도발성 삐라를 뿌리고 싶은 날
간절곶 붉은 바다에 앉아
너에게 붉은 편지를 쓴다
그대가 검붉게 죽어가는 목소리로
마음이 붉게 타들어가는 병이 들어 힘들다고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왔기에
오늘 나는
추락을 예감한 마지막 불꽃의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떨리는 손으로
그대에게 쓰는
붉은 편지를 적어 내리고 있다
가을을 탄다는 건 어쩌면
부여잡으려 할수록 놓칠 수밖에 없는
살아남기 위해서 떨어져야만 하는
늙고 오래된 어떤 의문부호를 받아들이는 일
이 붉은 편지
가냘픈 바람에 실려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날 문득
그대 발끝에 와서 바스락대는 한 장의 잎을 보거든
그 때 비로소
생의 비의까진 아니더라도
당신조차 몰랐던 나의 비밀과
생의 비애가 적혀 있는 이 붉은 편지를
실패라고 읽어도 좋고 나락이라 읽어도 좋다
어쩌면
그도 저도 아니고
그냥
낡은 구식으로
낙엽이라 불러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