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곶감
햇볕 짱짱한 십일월의 어느 날,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이 사자들을 풀어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존재들을 지옥으로 모두 불러들였다 뜬금없고 터무니없는 이 조치는 세상 평화를 위해서라는 듣기 좋은 문구로 포장되었지만 알고 보면 자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에 대한 염라대왕의 질투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이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통치행위에 대해 반기를 드는 세력 하나 없는 가운데 옛날 어린이들이 무서워했던 호환 마마 전쟁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제일 먼저 도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은 이번 명령이 있기 이미 오래전에 이곳으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뒤에 어린이들 세계에도 엄연히 세대차이가 있다는 말을 씩씩거리며 이십세기 어린이에게 아니 어린아이들을 두었던 엄마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였던 불법불량비디오가 도착했다 염라대왕이 그건 다 핑계고 이유인즉슨 너희들이 게으르고 느려 터져서 늦은 것이라며 비디오테이프들에게 면박을 주자 일렬횡대로 늘어서있던 비디오테이프들의 입은 쑥 들어갔다 하루가 지나 일제시대의 순사들이 또 하루가 지나 순사보다 더 무섭다는 전후시대 주사들이 여전히 자신의 무서움을 알아달라는 듯 헛기침을 하며 도착하고 오래전에 도착하여 몇 날을 무료하게 지내던 호랑이가 그들을 향해 쟤들보다는 자기가 더 무섭다고 이빨을 으르렁대는 것 이였다 그러자 수십 세기 전에 와서 염라대왕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춘추전국시대의 여인이 한마디 했다 내가 생전에 네 놈한테 시아버지 남편에 아들마저 잃고도 궁벽하고 외딴 골짜기를 떠나지 않은 이유를 어느새 잊어먹었냐고 대들자 호랑이는 그제 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염라대왕에게 자기보다 더 무서운 가혹한 정치와 기만적인 경제도 불러들여야 한다고 간청했다 염라대왕은 순순히 그들도 잡아들이라고 저승사자한테 명령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조용해진 것도 잠시 그동안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염라대왕의 또 다른 한 쪽 옆을 차지하고 있던 옛날이야기꾼 할머니가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여기에 모여 있는 이놈들은 저와 아주 친한 이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놈이야 말로 정말로 무서운 놈입니다 다들 이야기꾼 할머니에게 눈이 쏠리고 염라대왕은 그 놈이 도대체 누구냐며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 앞에 선 왕비처럼 보채기 시작했다 이야기꾼 할머니가 이 놈 이름 한 자만 나와도 벌벌 떨며 도망가는 호랑이들을 생전에 수도 없이 봤다 이놈은 호랑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아이울음을 일 초 만에 뚝 그치게 하는 그런 무서운 존재라고 말하고 다시 뜸을 들이자 염라대왕은 얼른 이야기를 계속 하라고 다그쳤다 할머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어느 시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쟁보다 정치보다 경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 놈이다 아래 세상에서 요즘 한창 잘나가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이 바로 이 놈과 같은 과인데 달콤함에 길들여지는 게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가장 무서운 게 아니겠냐며 좌중의 동의를 구하는 것 이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호랑이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그럼 그 놈과 함께 달콤한 것들을 모조리 잡아 들어야 한다며 주제넘게 호기를 부리자 참다못한 염라대왕이 그 문제는 자신의 표밭과도 관련 있는 민감한 사항이니 수많은 엄마들의 여론을 들어봐야 한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 때다 싶어 이야기꾼 할머니는 그 놈이 아직 덜 여물어서 지금은 잡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낙심한 염라대왕은 이야기꾼 할머니에게 그러면 그 놈이 다 여물어 잡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무서운 이야기를 계속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늘나라 염라궁에서는 이야기꾼 할머니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하늘 아래 어느 농가의 처마 아래에서
곶감은
유유자적 세월 모르게 말라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