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지난번 황산과 금강산, 설악산에 대해 쓴 글을 퍼 오면서 "한국적 욕망의 구조와 중국적 욕망의 구조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평을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아래 이분의 칼럼을 읽고 수긍이 가서 썬 것이지요. 참고로 IFC는 서울 여의도에 새로, 아니 제작년인가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총 3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대식 건물입니다. 작년인가에 한번 가봤는데 다소 썰렁한 느낌입니다. 어쩌면 그 느낌은 건물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규모에 비해 오가는 유동인구가 적은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긴 제가 간 때가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 이었군요...
IFC는 난타당하고 있었다. 2009년 여름이었다. 2007년 2월 착공된 IFC는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IFC는 청계천과 함께 이명박 서울시장의 2대 역점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때맞춰 완공된 청계천은 이명박 시장을 이명박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IFC는 뒤처졌다. 원인은 미국발 금융 위기였다. 여론까지 악화됐다. IFC의 실패는 현직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는 좋은 빌미였다.
당시 부동산 임대 대행사 세빌스와 건축주인 AIG는 모델하우스를 바로 옆 신한금융투자 빌딩에 마련해놓고 있었다. IFC의 공사터가 곧장 내려다보였다.
AIG와 세빌스는 틈나는 대로 모델하우스를 공개하면서 어떻게든 여론을 돌려보려고 애썼다. IFC가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걸 막지 못했다. 초고층 빌딩은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지어지는게 아니다. 정치와 경제의 합작품이다.
권력과 자본의 욕망이 서로에게 서로를 깊이 삽입하지 않으면 결코 완전한 초고층 빌딩은 만들어질 수 없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높이 솟은 건물은 대성당들뿐이었다.
모든 건축물은 신의 아래 왕의 발밑에 있었다. 니체가 신을 죽였지만 대혁명으로 왕도 죽자 프랑스는 오히려 더 평등 지향적이고 더 평면적인 나라가 됐다. 높이의 금기를 처음 깬 건축물이 에펠탑이었다.
부르주아지의 계급성을 비판한 소설 [비곗덩어리]로 데뷔한 모파상은 평생 에펠탑을 등지고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에선 정치가 초고층 빌딩을 거부했지만 독일에선 정치가 초고층 빌딩을 욕망했다.
히틀러는 한때 건축가를 꿈꾸던 인물이었다. 히틀러는 게르마니아라는 독일의 초고층 수도를 기획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거대 건축물들이 정치와 자본의 균형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 상태였다면 진정한 의미의 권력과 자본의 결합은 미국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뉴욕이 마천루의 본산이 될 수 있었던 건 대공황 이전의 미국이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욕망의 분출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가치였다. 1930년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됐다.
1년 뒤인 1931년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준공됐다. 권력이 자본을 장악하면 건축은 획일화된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본은 다양성을 만든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의미 있는 초고층 건물은 세계무역센터였다. 세계무역센터는 사실 경제적으로 무너져가던 뉴욕이 매달린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압도적인 위압감이 중요했다.
그래서 빈 라덴의 표적이 됐다. 초고층 빌딩을 향한 욕망은 아시아로 옮겨 왔다. 1996년 2월 완공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아시아 최초의 초고층 빌딩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권력자 마하티르 모하마드가 추진한 기획이었다. 권력의 욕망이 자본을 억지로 끌어들인 결과물이었다. 램 쿨하스가 설계한 베이징 CCTV 신사옥도 자본을 장악한 중국의 정치권력을 보여준다.
수직적 건물이 서로 기대어 수평과 사선을 이루는 CCTV 신사옥의 설계는 아시아 초고층 빌딩 경쟁의 국면을 전환해 버렸다.
램 쿨하스는 말했다. "나는 초고층 빌딩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IFC는 아시아로 옮겨 붙은 초고층 건축 열기가 서울에서 발화한 결과물이다.
IFC가 기획됐던 2005년 무렵은 한국이 동북아 금융 허브를 꿈꾸던 시기였다. 기획을 주도했던 시장이 대통령이 되자 오히려 정치적으로도 수세에 몰렸다. 한국의 역설이었다. 한국은 권력과 자본이 만나서 초고층 빌딩을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권력의 욕망은 늘 견제를 당하며 자본의 욕망은 늘 비난받는다. IFC의 설계를 노먼 포스터나 렌초 피아노 같은 거장이 아니라 아키텍토니카에서 맡은 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아키텍토니카는 마이애미에 뿌리를 둔 건축 그룹이다. 마이애미는 건축적으론 스페인풍의 이국성과 모더니즘의 실용성이 혼재된 도시다. 아키텍토니카의 설계들도 공간감을 극대화한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대부분이다.
상하이에 있는 중국 은행 본사나 아부다비에 있는 게이트 타워나 홍콩의 사이버포트만 봐도 그들이 건축주를 만족시킬 줄 아는 건축 집단이란 걸 알 수 있다.
합리적이고 타협적이란 얘기다. 권력과 자본의 응집력이 약한 한국과 서울이 초고층 빌딩을 추진하려면 아키텍토니카가 정답이었다.
한국은 욕망을 거세하지도 욕망을 용인하지도 못하는 나라다. 앵글로색슨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유럽식 평등주의를 꿈꾸는 모순 국가다. 어쩌면 욕망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중국과 영미뿐이다.
중국은 20세기 100년을 제외하곤 내내 욕망의 화신이었다.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주변을 압도하지도, 그렇다고주변과 어우러지지도 못하는 IFC는 한국적 욕망의 금자탑이다.
글 신기주
사진 김정호
제공 Esquire
발행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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