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27

늦가을

늦가을 어젯밤 친구들이 남기고 간 간장통닭을 데워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옥상으로 올라가니 이런저런 소리 들린다 더 이상 둥글둥글 원만하게 살지 말자 외로워도 슬퍼도 까칠하게 모나게 가자 어젯밤 술 취해 불쑥 찾아온 친구들에게 얼굴을 붉혔는데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구순 노모의 해소기침 소리가 내 가슴에 사각사각 가랑가랑 쌓이고 가을밤 옥상에서 들리는 의태어인지 의성어인지 모르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래 대책 없이 춥고 시린 늦가을인 게야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남호선호사상이 유독 강한 어느 마을이 있었어요 어느 해 가을 마을에 역병이 돌아 마을의 사내아이들이 하나 둘 쓰러져갔어요 원인도 해결책도 몰라 마을전체가 멘붕에 빠진 가운데 마을의 원로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어요 어떤 노인은 굿을 한 판 크게 벌여야 한다고 말했고 또 어떤 노인은 이게 다 호시탐탐 동네를 넘보는 북쪽 마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어요 북쪽 마을을 운운하는 이 추론은 이 동네의 우두머리들이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사사건건 북쪽 동네를 표적으로 삼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 스스로도 늘 의아해하는 하는 건 북쪽 마을에 대해 자신들 맘대로 붉은색으로 덧칠해 놓고서 스스로 경기를 일으킬 만큼 적대시하고 있다는 것과 분명한 것은 싫어하는 대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