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꿈결 속으로 유년의 언덕배기 친구들이 아른거리고
아침마다 어줍잖은 해몽으로
고향으로 수화기를 들곤한다 찢어진 선거 공고판
미소 띤 후보자의 사진 앞으로는
여느 해보다 더한 찬바람이 불어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무심하게 지나가는데
은반의 하늘로 울려 퍼질 캐롤송도
내일을 점치지 못하는 기온에 묻혀 들려오지 않아
저마다의 아비들은 쓴 약 같은 담배연기를
하늘로 지펴 올리며 술잔을 부딪치고
아이들은 이불을 걷어차고도 깊은 잠에 빠진다
아침마다 신문들이 백지공약을 색칠하며
부수를 늘리고 예전같은 미담들이
무엇인가에 밀려나 들려오지 않는 1992년 12월
이도 저도 한 철 반짝일 뿐
세상을 녹여줄 수 없음을 직감한 것일까
올해는 겨울추위가 제 모습을 찾을 것이라는 소문이
귓전을 울려 겨울나무들 꼿꼿이 서서 떨고 있는데
운좋게 당첨되어 입주한 아파트의 난방비를 걱정하면서
부쩍 자라난 아이의 바지자락을
내려 바느질하는 가난한 엄마의 눈매
창 밖 가로수 위로
길몽 같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