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세한도-풍경의 발견

일주일만에 쇠둘레를 두번 돌다.

빛의 염탐꾼 2009. 12. 13. 22:09

사실은 새까만 거짓말, 철원, 옛이름 쇠둘레를 일주일 만에 두번 갔다 온 것 이지요. 그 넓은 철원 땅을 두번이나 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요. 아래가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소를 간직한 한탄강의 풍경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제주도나 통천(북한)의 총석정에 있는 것과 같은 주상절리이지요. 물론 그보다는 급이 좀 떨어지지만...... 

 

일주일만에 두번이나 갔다 왔다니 이미 눈치 챘겠지요. 한번은 사전답사로, 어제는 실제 답사를 갔다 왔지요. 화산지형이란 말은 들었지만 철원의 지질이 좀 특별한지는 어제서야 알았습니다(정확하진 않지만). 타고온 버스를 길 한켠에 주차시켰는데 바퀴가 빠져버렸답니다. 차를 미는 놈들이 다 중학생들인데도 저와 키 차이가 나지 않군요.

 

고석정, 가슴에 단 저 커다란 명찰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고석정은 한번쯤 가고 싶은 곳이였는데, 갑자기 몇일 사이에 두번이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말도 안되는 해설을 하면서 가니 감흥이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중에 '이나라 이 강산에'로 시작되는 장사익의 노래가 있지요. TV드라마 '임꺽정'의 주제가인데 그 가사 중에 '기구하여라 고단한 세상, 타고난 굴레를 어쩔수가 없어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실 평소 술을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이 구절을 흥얼거리곤 했었는데 어제는 정말이지 그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 감흥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지금 '이나라 이강산'의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닌데 말입니다. 어찌됐든 민간인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은 나도 이나라 이강산의 구성원임에는 틀림없나 봅니다.

 

'제2땅굴'이란 곳입니다. 굴의 높이가 채 2m 안되는 관계로 모두 안전모를 쓰고 들어갑니다. 키가 작은 것이 절대 루저가 아닌 땅이 땅굴 안입니다. 키큰 사람들이 들어가다가 돌아나오는 것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그것도 두번이나..... 그러고보니 제가 요즘 부쩍 땅굴을 많이 답사합니다.

 

별 감흥이 없기는 나나 생각없는 초딩이나 중딩이나 다 같습니다. 그저 땅굴 천정에 벽이 부딧치지 않았다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그놈들이나 나나 닮았습니다. 

 

지뢰, 섬뜩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어느새 '이발소 그림'같은 존재입니다. 특히 안보관광을 가는 철원이나 양구같은 데서는 말입니다. 한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납니다. '이발소 그림처럼'이란 제목의 시인데 그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생이 나를 지루해 하는 눈치였다', 저자가 누군지도 잊었지만..... 하여간 어제 철원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도 김일성고지도 백마고지도 피의 능선도 ..... 내가 그 풍경들을 지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들이 나를 지루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관념적인, 아니 말장난을 했습니다. 아래 사진 중앙이 궁예도성이 있었다는 자리이고, 그 뒤의 희미한 능선이 김일성고지라는 곳입니다. 김일성이 철원을 빼앗기고 삼일 동안 통곡했다는 곳인데 사실 그말조차도 뜬구름 같습니다. 

 

정치인의 이름 석자는 어딜가나 돌로 남아 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금강산이나 휴전선이나..... 여기 비무장지대에도 다르지 않아 돌로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평화전망대 1층에는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그 한켠에 '통일을 위한 정부의 노력(정확하지 않음)'이란 코너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걸린 현판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더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름도 아름다운 월정리역,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전설은 언제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지금 녹슬어 남아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욕망이 언젠가 그저 전설이 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함.....

 

끔찍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아니 어쩌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의 눈에는 이미 전설이 된지 오래일지도 모릅니다.  

 

전설이 다시 창조가 되는 날을 꿈꿔 봅니다. 형을 따라온 어느 초등학생의 초롱한 눈빛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노동당사는 이 땅의 아픈 과거가 아직은 전설이 될 수 없다는 듯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부서진 창문마다 파란 하늘을 이고서 말입니다.

 

총탄자국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새로 덧댄 지지대에도 한국현대사가 고스란히 덧칠되어 있습니다. 인솔자임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떠나 한바퀴 둘러 보았지요. 어쩌면 이 초라한 건물에 한국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이지 철원은 한반도 근대사를 증명할 거대한, 살아있는 유산입니다. 금강산 가는 길목의 철원은 조선시대부터 이미 그 명성을 날렸지만 일제감정기부터 남북전쟁까지의 철원과 그로부터 배태된 지금 (구)철원의 페허들은 제 짧은 소견인지는 모르지만 한양이나 평양에 버금가는 역사, 그 자체입니다.

 

아니 어쩜 그 이상이인지도 모릅니다. 소박하고 누추하지만 경복궁이나 비원보다 살아있는 유산임에 분명합니다.

 

무너져가는 러시아식 콘크리트 건물을 받친 저 지지대 만큼이나 우리의 근대사인식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튼튼하진 못할지라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