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체육공원에 나갔더니 새로이 우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를 7개의 청동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원래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여우고개'를 소재로 한 것이랍니다.
'여우고개'는 과천시에 있는 남태령을 일컫는다는군요. 그래서 과천시에서는 [어우야담]]에 나오는 '여우고개' 이야기를 성실함이 미덕이라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변형한 동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로 조형물을 만들었답니다.
참고로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여우고개'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강 남 청계(淸溪) 북에 과천(果川) 관사가 있고, 관사 북쪽 큰길의 고개 길이 ‘여우고개’이다. 옛날에 어떤 길손이 여기를 지나다가, 수간 초가에서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들어가니, 백수 노인이 나무를 깎아 소머리 탈을 만들고 있었다. 노인은 소머리 탈을 완성하자, 그것을 손님에게 주면서 한번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소가죽을 주면서 그것도 입어 보라 했다. 손님이 장난삼아 그 소머리 탈을 쓰고 소가죽을 입으니, 갑자기 사람이 소로 변했는데, 아무리 벗으려고 애써도 소용없고 완전히 소가 되어 버렸다. 다음날 노인은 이 소를 타고 시장에 나가서 비싼 값을 받고 농부에게 팔았다. 소가 된 사람은 자신이 사람임을 아무리 변명해 소리쳐도 소의 울음소리로만 들렸고, 시장 사람들은 이 소가 집에 송아지를 두고 왔거나 뱃속에 황(黃)이 있어서 계속 운다고 말했다. 노인은 소 판 돈으로 베 50필을 사서 떠나면서, 소 산 농부에게 이르기를, “이 소를 몰고 절대로 무밭 근처에 가지 마시오. 이 소는 무를 먹으면 곧 죽습니다.” 하고 말했다. 소가 되어 새 주인을 태우고 돌아온 이 사람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이 본래의 형체를 잃고 가축이 되어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하는구나.” 하며 한탄했다. 이때 마침 아이가 무를 씻어서 한 바가지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앞서 노인이 무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을 기억하고, 죽을 마음으로 그 들고 있는 바가지를 입으로 받아 떨어뜨려, 재빨리 무 몇 줄기를 먹었다. 그러니까 곧 소머리 탈이 벗어지고 소가죽이 벗겨지면서 알몸의 사람으로 변했다. 소 주인이 놀라서 그 영문을 묻기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시 그 산 고개로 노인을 찾아가니 노인은 물론 초가집도 없고, 바위틈에 베 몇 필만 놓여 있었다. 이후로 이 산 고개 이름을 ‘여우고개’라 불렀다. 군자가 말하기를, 이 얘기는 비록 황당한 얘기 같지만 인간 사실과 비유가 된다. 세상 사람들은 혼미한 시대에 살면서 올바른 길을 잃고 간사한 사람의 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한 번 나쁜 사람 올가미에 걸려 팔리고 나면, 이 얘기 속의 소처럼 남의 조종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때 수천 마디의 말로 변명해도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으니 슬픈 일이다.'
아래부터는 '소가된 게으름뱅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7기의 청동조형물
아들이 빈둥빈둥 놀기만 합니다... 돌로 만든 평상에 감자가 놓여 있네요... 꼭 저를 닮았네요. ㅋㅋ
책모양의 조형물에 각 파트별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네요... 이 조형물도 물론 7개
어머니의 잔소리에 짜증난 아들이 드디어 가출합니다. 그래도 섭섭하여 돌아보네요.
'소가된 게으름뱅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예전에 썼던 시가 한편 떠오릅니다. 아마 1992년(?)인가 봅니다.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론'의 심층을 이해하지 못하던 설익은 청춘의 시기, 언듯 '상상력의 씨앗'이 보였다고 자화자찬 했던 기억이 나네요... 부끄럽지만..... 그때를 제대로 살리기위해 그대로 옮겨봅니다.
어느 노동자 이야기
-우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빌려
그는 말이 없었다 얄팍한 입술로 상대방을 꼬시지도 않았고 남들 앞에서 큰 소리 칠줄도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무섭게 큰 공장에 들어가 묵묵히 일했다 사장이 "지금은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다"라고 훈시할 땐 더 열심히 일했고 "근로자는 무지몽매하고 게으른 것이 천성"이라고 목청을 높여도 고개 흔들지 않았다 "저 사람 왜 저리 앞뒤가 꽉 막혔어"라고 동료들이 손가락질 할 때도 기계 앞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그는 한달에 한번 동생 학비를 고향에 송금하기 위해 우체국에 들렀고 명절 때는 몇 개씩의 선물꾸러미를 챙겼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도 공장 한켠에서 꽃들이 어우러져 피고 지는 몇 해 동안 그는 그렇게 살았다 아무 탈없이
(나와 소가 무엇이 다른가 굵은 팔뚝, 두툼한 손, 오직 기계 앞에 묵묵히 서 있는 나는 등심, 안심, 근수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한국산 토종 한우와 무엇이 다른가)
사장은 늘 그랬다 평소에는 게으르다고 고삐를 늦추지 않다가도 임금인상이나 단체협상 기간만 되면 "우리는 한가족입니다 운명공동체로서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은 절대 없도록 합시다"라는 요지의 일장연설을 했다 사장의 입에서 '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날 점심 식단에는 어김없이 진한 고깃국이 오르고 공장은 또다시 돌아갔다
(평소에는 소인 나는 매월 초하루나 임금협상 기간에만 환골탈태되어 사람이 되는 것인가 사람이었던 나를 소로 내 모는 자 누구인가 조장인가 반장인가 아니면 세상인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사람같이 살고 싶다 사장이 우리에게 먹지 말라는 것은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먹으면 모두가 끝장난다는 '무'는)
아들이 소머리 가면을 만들고 있는 노인을 만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면은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게으른 사람이 쓰면 좋은일이 생긴다는 말을 믿고(물론 '''무'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도 안되는 말도 잊지 않았지요) 아들이 소머리 가면을 쓰는 수....운.....간, '제명이 됐어요'(인간에서 말입니다) ㅋㅋ
쟁기질만 합니다. 아이구 힘들어.... 주인이 주먹질도 하네요.
너무 힘들어서 죽을려고 주인집 아이의 무를 얼른 가져다가 먹는 수...운....간,
다시 제명이 됐어요(이번엔 소에서 말입니다).... 후일 이야기는 뻔합니다. 우리모두 평상에 누워만 있지 맙시다... 이건 나에게 할 소리인가? ㅋㅋㅋ
참고로 이 조형물은 과천시가 2009년 12월 국토해양부에서 추진하는 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사업 분야 '테마가 있는 양재천산책로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국비 1억5000만 원을 지원받는 등 모두 3억4000만 원을 들여 2010년에 만들었다네요.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는 교훈알리기 치고는 엄청난 돈이 들었네요....
장마후의 하늘은 정말 푸르네요.... 관문체육공원과 청계산
천적이 없은 양재천의 월척붕어들, 그렇게 여름이 무르익어 갑니다... 모두들 입맛 없다고 밥 거르지 맙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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