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말복 그리고 처서 - 양재천 8.21

빛의 염탐꾼 2011. 8. 25. 16:50

8월 21일 일요일.... 양재천에서 풀장을 만드는 아이들

 

양재천 산책로 위로 쏟아지는 폭포수는 지하철 4호선 과천역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

 

올핸 정말이지 여름이 오다가 샛길로 그냥 가 버렸습니다. 두달간 이어진 길고도 굵은 장마비로 인해 말입니다. 장마가 끝나자 마자 바로 가을입니다. 몇 일 햇볕이 다깝습니다만 분명 가을햇살입니다. 양재천의 계류도 여름을 건너뛰고 곧바로 가을빛을 연출합니다.

 

말복

 

개들의 무모한 울음소리만 남기고/여름은 갔다/붉게 휘갈겨진 최후통첩들이/하루살이로 펄럭이다/우수수 떨어지던 날들, 약국에선/위장의 역겨운 현실거부를/그저 더위먹음으로 단정내렸지만/강물 위로 퉁 퉁 불은 시체들이 떠내려오는/지랄같은 악몽은 계속되었다/땀에 절었던 근육, 그 모든 기억들도/무수한 개들을 따라 행방불명 된 것일까/이제/뉴스 말미를 길게 늘이던 수제의연금도/꼬리를 감추고/바람만이 다발로 날려/수박조차 시절의 씁쓸한 뒷맛으로/줄기를 비트는데, 마를 수 있을까/터질 수 있을까, 마당 한구석 널린 고추와/움집처럼 세워진 저 참깨단은/풍성한 식욕 한 번 채우지 못한 채/까만 살갗만 남기고/충혈된 눈매로 여름은 갔다(1999, 8, 23)

 

길고 긴 장마에 양재천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천국인지? 언제 마를지 모를 이곳에서 물고기들이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다.

 

야생초들이 가득했던 이곳은 5월쯤이던가? 야생초들을 모두 걷어내고 잔디를 깔고 그 위로 조팝나무와 화살나무 등을 심었다. 6월의 거친 물살이 그 위를 덮치는 순간 모두 떠내려가고 지금은 흔적도 없다.

 

신록이 무르익어가던 위지점의 6월 2일의 모습

 

올해의 폭우가 유난했다고들 하나.... 그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잔디와 나무들로 조경을 하지않았으면 어떠했을지? .....  자연 앞에서.... 모든 가정과 상상은 무의미하다..

 

지금은 폐허가 된 위지점에 조경수로 심어졌던 화살나무의 6월 2일 모습

 

간신히 남아 뿌리로 흙을 움켜잡은 잔디들 ...... 무더위가 아닌 이어지던 폭우속에서.... 어지러운 꿈속에서 올해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이 갈대들 위로 몇번의 헝클어진 꿈들이 덮쳤던가? 양재천의 갈대들도 일어서기 무섭게 다시 덮치는 폭우에 눕기를 반복하여.... 최고의 키를 자랑할 시기이건만 별반 자라지 못했다.

 

예년같으면 성인의 키를 훌쩍 넘겼을 놈들이... 이지경이다.

 

무성해야 할 갈대숲도 숭숭 구멍이 뚫려 휑한 곳이 천지....

 

6월 2일과 비교해보면 색깔은 더 짙어졌지만 듬성듬성 빈틈이 많다(아래는 같은 지점의 6월 2일의 사진)

 

올여름의 비는 어마어마했다

 

처서 

 

굵고 실하지 못하면 태어나지 않음만도 못한

계절이 온다 사랑이여

 

눈물겹게 기다려야할 그 무엇이

아직도 남아

뒷골목의 무서운 구토, 누더기로도

쓰러지지 못하고 마른 몸뚱아리

뒤척임으로 끝내 남아

새벽을 타고 우는 사람아

 

굵고 실하지 못하면 시작하지 않음만도 못한

가을이 온다

(1999)

 

그렇게 이상한 여름을 지나고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처서도 지나..... 물도 하늘도 완연한 가을빛이다.

 

위지점의 6월 2일 모습

 

무엇으로 다시 세월의 강으로 흘러들 것인가?

 

묻지마라.... 삶은 언제나.... ????  ?표의 연속!

 

아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저 긴다리 흰날개 검은 날갯죽지에게 물어보던지! ㅋㅋ(6월 2일 사진)

 

예년같았으면 이 듬성한 갈대사이로 작년의 참외씨들이 떠내려와.... 지금쯤 무수한 개똥참외가 꽃을 피웠으리라.... 올해엔 한놈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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