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강정
눈 녹아 파래진 천체가 창가에 떴습니다
당신의 이마를 두드려 숨은 사랑을 꺼내듯
별들을 호출합니다
땅을 뚫고 나오는 뱀들의 머리에 불볕이 일어
오래 냉각된 몸 안의 물살들이 아지랑이로 날아오릅니다
내 몸이 만물 속으로 사라집니다
사라지며 비로소 그늘이 되고 바람이 되어...
수천년 살아남은 이끼들의 숨결을 해독합니다
만방으로 번지는 노래 속에
별들이 잘 녹은 설탕처럼
몸 속을 성큼성큼 적시고
읽을 수 없게 번진 문장 속에 펼쳐지는 당신의 우주
망각은 누런 꽃들의 뿌리 속에 단단한 즙으로 흐르지요
그 뿌리를 씹어
피고름에 덮인 죽은 詩나 짜 마셔봅니다
그리하여 여름이면 산달이 가까워
곱게 실성한 거미떼들이 대낮 허공에 찬란한 별자리를 그려놓을 겁니다
거미줄에 걸린 놈들 중 제일 어둡게 보이는 짐승이
아마도 내 기억 속 가장 먼 곳에서 돌아온 당신의 기별일 거예요
*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 문학동네, 2006.
몇 번 되풀이해 읽었더니.... 좋다! 끝부분이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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