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용늪, 작은 용늪
2014. 9. 28
늪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양구군 동면에서 해안면으로 넘어가는
돌산령 중턱에서 45인승 전세버스는 끝내
퍼지고 일행들은 새끼에 꼬인
굴비처럼 줄줄이 버스에서 내렸다
용이 되어 승천하려면 늪에 빠져 몇백년을
견뎌야 한다는 전설을 믿고 싶은걸까 모두들
시동이 꺼진 낡은 버스를 뒤로 하고
5킬로미터가 넘는 군사도로를
말없이 걸어올랐다 다시
위병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산능선에 올라서니
앳된 군인들의 족구가 한창인데 어쩌면
다시 청춘의 한때처럼
몸도 마음도 잊고 저 함성에
빠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도 잠시
자연보호구역에 묶인 고산습지에는
출입제한 푯말이 선명하고 나는 그저
문화생태해설사가 들려주는
신파조의 용이야기를 흘려 들으며
희미해져가는 군인들의 함성소리를
애써 쫓아가지만 오늘도
군사시설로 둘러친 작은용늪은 잡목에 묻혀가고
산아래 넓게 펼쳐진 큰 용늪조차
불혹의 흐린 눈빛으로는 희미하기만 한데
신파의 눈물과 영웅의 노래가
범벅된 착시와 환청의 시대
이무기가 된 들 무엇하며
용이 된 들 또 무엇하리 늪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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