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산문

늪과 소와 담에 대하여

빛의 염탐꾼 2015. 6. 3. 22:23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 8시 뉴스 시간과 어쩔 수 없이 일치하여(아니 나는 아직 사회적인간이라고 시위하듯 가끔 뉴스를 본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그도 저도 아니면 한물간 단어인 동교동계이니 상도동계이니 이런 단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뉴스가 권력지향적 정치권을 흉내내는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다. 어쩌면 지난 세기 80년대같은

 

NL, PD, 아니면 ND같은 그런 단어보다 못한(하긴 그때도 어떤 선배를 처음 만나느냐 따라 자신 앞에 저런 국적불명의 알파벳이 붙어 다녔다) 앞 단락에서 언급한 어떤 인물에 대한 줄서기식 편가르기가 일상화된 것이 더욱 쓸쓸할 뿐이다.

 

90년인지 91년인지 자세한 년도는 모르지만 나도 저런 편가르기에 어리둥절 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처음 운동을 접했던 쪽과 현실의 내 방식을 따져보고 당연히 현실의 운동방식을 선택했다.(늦깍이 운동권이었던 나는 - 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지만 - 친구들과 선배들이 모두 빠져나간 그 자리, 잠시 아득 하였던가? 아니였던 것 같다. 사람이 아닌 방식과 내용을 우선시했던 당시의 나는 태연했던 것 같다. 어쩌면 '배신과 가벼움'이라는, 그런 타인들이 뱉어내는 아전인수격 단어들을 애써 무시했을 수도 있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인간에게 거리를 두는 나의 이 팍팍함과 건조함이 맘에 든다. 그렇게 난 용이되어 승천하기를 꿈꾸는 이무기가 사는 늪도,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홀린 듯 빠져드는 소도 싫다. 그저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담이 좋다. 그걸 담백하게 느끼든 아니든, 그건 각자의 몫이다..... ㅎㅎ

 

사진은 오늘 산책길, 양재천에서 만난 담인지 소인지 늪인지 모를 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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