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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빛의 염탐꾼 2018. 12. 23. 15:34

오리엔탈리즘



주로 못난 얼굴을 비유하는데 애교성으로 쓰이는 메주니 호박꽃이니 하는 말 속에는 농촌비하성 의도가 살짝 숨어 있다. 중국어에서 흙토()를 쓰는 [tǔ]하다는 말은 농촌스럽다를 의미하는데 중국 또한 한국과 다르지 않아서 농촌스럽다촌스럽다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 말 또한 무의식중에 농촌비하 감정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어에는 褒义词(褒義詞, 포의어, 바오이츠(bāoyìcí))라고 찬양 또는 칭찬하는 따위의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있고 贬义词(貶義詞, 폄의어, 비엔이츠(biǎnyìcí))라고 폄의, 헐뜯거나 비방하는 의미, 나쁜 뜻으로 쓰이는 단어가 있는데 여기에 대입해 보면 메주니 호박꽃이니 투하다 하는 등의 표현은 폄의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 명품 패션브랜드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에서 동양인 비하성 광고로 호된 홍역을 치렀는데 이 또한 은연중에 나타나는 유럽을 기반으로 두는 서구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선배랑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스위스 융프라우로 향하는 길에서 선배는 자신은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와서 알프스의 설산에 별 감흥을 못 느끼겠으니 혼자 갔다 오라는 것 이였다. 조금은 황당하였으나 유럽의 지붕(Top of Europe)’이라는 융프라우에 갔다 오는 몇 시간 안 되는 기차운임이 한국 돈으로 이십만원에 가까웠기 때문에 선배의 그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였다. 여차여차하여 같이 다녀오기는 했으나 융프라워를 온통 수식하는 ‘Top of Europe’(사실 알프스 최고봉은 몽블랑이라 하고 유럽최고봉 또한 알프스가 아니라 그루지야 카프카스산맥에 있는 엘브라즈란다)이라는 단어에서 느낀 것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유럽중심주의에 있었다. 유럽을 향한 동양인의 삐딱한 감정이 조금 개입된 것은 사실이나 조금 과장한다면 유럽의 중심부에 자리한 알프스산맥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그런 시각을 풍경이나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저 멀리 네팔 히말라야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나 유럽인들의 가슴 한 켠에는 히말라야보다 알프스가 더 높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천운영의 단편 다른얼굴’(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일 수도 있다)작가의 말’(인지 해설편에서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에서 좋은 문화도 나쁜 문화도 없다. 우월한 문화도 열등한 문화도 없다. 문화란 것 그 자체가 차별과 이기를 포함하고 있다’(그냥 이런 뉘앙스의 글이고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아무리 검색해 봐도 안 나온다)고 써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본다면 우리 사고의 일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국수주의를 포함한 자문화이기주의 와 자민족중심주의 그리고 외국인노동자와 이민자차별 등의 현상들이 쉽게 설명될 수 있겠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는 가족중심주의와 지역감정 인종차별과 색깔론 또한 이런 맥락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같고 다름, 나아가서 나와 가깝고 멀고에서 비롯되는 극명하게 갈라지는 시각과 사고의 차이는 가깝게는 우리가 은연중에 뇌까리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같은 생물학적이면서도 무의식적인 논리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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