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북해도 구시로발 삿포르행 열차
삿포르공항이 있는 미나미치토세역
승차권을 가지고 내 옆 자리를 앉은
여드름 채 가시지 않은 앳띤 소년은
앉자 마자 책을 펼치더니 그것도 잠시
테이블에 머리를 붙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고등학생은 되었을라나 잠시 후
깨어나더니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더니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 물론 그럴 때마다 나에게
꼬박꼬박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한다
나한테 뭐가 미안할까 내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인사문화는 어쩐지 인간본능을
넘어선 구석이 없지 않은 듯도 한데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몇 차례 터널을
지나고 흘깃흘깃 옆을 쳐다보니 소년은
기대반 불안반의 표정을 하고 면접답안과
자기소개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소년의
손에 들린 열차표 세 장, 아마도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도 두번의 열차를 더 갈아탈 모양이다
모든 길에도 표정이 있다면 갈림길은
분명 저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미나미치토세역에서 두개의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소년은 내리고 나는
한참동안 소년의 뒷모습을 쳐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