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허수는 아버지가 없다 아니 존재하지만
조선시대 홍길동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맨 정신으로 마주앉아 대화라는 걸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허수의 아비는
젊어서 노름과 여자에 빠져 적지 않은 가산을
탕진했다 한마디로 헛수를 둔 것인데
술만 취하면 헛기침과 함께 지겨운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가화만사성이다 군사부일체다 지키지도
못하는 말만 중언부언 자주 식솔을 괴롭혔다
그때부터인지 몰라도 허수는 모든 교훈은
헛소리로 일축해 버리는 버릇이 생겼다
허수 아버지의 취미는 가훈쓰기였고
특기는 가훈어기기였다 특히
훈계와 훈육을 즐겨 술에 취해
허수가 다니던 초등학교 월요전체 조례 때
운동장 단상을 여러 번 점령하는 전설을 만들기도
했다 허수도 그 피를 물려받았는지
초중등시절에는 웅변으로 늘 상을 받았다
그랬던 허수의 아버지도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 육이오참전이다 국가유공자다
노익장이다 해서 각종연금을 받지만
쓸 곳이 없고 들판의 모든 새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은지 이미 오래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와서
아들딸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