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굴뚝같지만

빛의 염탐꾼 2019. 1. 22. 16:21

굴뚝같지만

 


 

이십일세기 산타는 다들 비만이라서 굴뚝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해요

 

국제빈민구호단체와 국제난민기구의 모금광고를 보고 생각한다

단돈 만원의 기아와 가난에 대해 생각한다

거대 군산복합체의 전쟁과 공포에 대해 생각한다

 

어릴 적 시골 아이들은 해 저무는 줄 모르고 놀다가도

굴뚝연기를 보고서야 집으로 향했다는데

경복궁 자경전과 교태전 뒤뜰에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왕조시대의 십장생과 아미산 굴뚝이 있고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에는 역류하는 연기로 인해 자주 눈물 흘리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자주 배를 곯았던 이유가 어린 날의 그 굴뚝 때문이였을까

해고노동자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그래서 굴뚝이 되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위선적인 것이 욕심이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와 분쟁지역 아이들도

몇 개월 속성 다이어트로 간신히 굴뚝을 통과한

산타마저도 질식시킬 것 같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교회십자가처럼

모락모락 피어나지 않는

 

순환되지 않는

역류하는 연기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같지만,

손 내밀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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