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아래층 아저씨가 다녀갔다, 층간소음
사이시옷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아래윗집 사이에 긴 말 안 합니다 좀 조심 합시다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갔다
중학교 때 선생님은 말문이 막힐 때마다
바로 가든 모로 가든 중간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아시겠어요 요즘은 그 중간이 제일 힘들다고요
나도 윗층으로 가서 따져야 하나 봐요
친구가 말했다
네 시의 행간에서는 아무것도 읽혀지지 않는다
제발 좀 여백과 농담을 배우라고
비평 아닌 비평을 하고 갔다
네가 동양화를 알기나 알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여백이란 단어가 떠올라 밖으로 뱉지는 않았다
또 다른 친구가 찾아와 대출 부탁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먼 산만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가 말했다
우리 사이에 이러기냐고
그건 피선거권자도 선거권자도
사용자도 노조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똑같이 쓰는 거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농담이란 단어가 떠올라 역시 밖으로 뱉지 않았다
부석사 무량수전 옆 뜰에 가면
의상과 선묘낭자의 전설이 깃든
뜬돌이 있지요 그거 말입니다
말이 좋아 애틋한 사랑이야기, 알고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사랑? 아닌가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운전에 서툴러서인지
앞차와의 안전거리 확보 미숙이란 명목의
추돌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나는
초등학교 전체조회나 운동회 때면 늘 꾸지람을 들었어요
줄을 설 때 앞뒤 좌우로 일정한 거리와 간격을 두어야 하는데
바짝 붙거나
너무 떨어지거나
언제나 둘 중 하나였거든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데
절대 넘지 마세요
거리에는 온통 흰 선 노란 선
모든 소음도 침묵도
모든 연대도 분열도
모든 싸움도 화해도
밀고 당기는 얇고 거대한 틈, 골깊은 밀물과 썰물, 중산간의 골짜기
우리 사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