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까다로운 성질과 달리 나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두루 잘 먹는 편이다. 굳이 맛좋은 곳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술은 좋아하지만 딱히 단골집이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싸고 인심좋으면 그만이다. 주머니가 가벼우(거의 비어있다고 하는 편이 맞다)니 당연하기도 하겠다.
그러는 내가 대구 있을 때 자주 갔던 곳이 도로메기집이라는 대포집이다. (구)대한극장에서 향교쪽으로 한 100미터 가다가 우회전하면 있는, 일명 도로묵이라는 조선시대의 한임금(아마 선조이던가)과 관련된 유래로 더 유명한 그 생선, 예전엔 흔해 별 대접을 못받았으나 지금은 조금 귀한 존재로 책봉된..... 1989년 3월, 문학운동을 한다고 들린 한 단체의 강연회를 마치고 처음 그 곳을 간 기억이 있다.... 그리고 97년부터 99년까지 그 부근에서 살 때 비가 오면 종종 들렀던 곳이다. 1000원을 주면 놋사발에 탁주를 한가득 부어주던 그집, 미닫이 유리창을 열고 들어가면 영락없는 60년대 선술집의 모양새를 하고 있던, 돈이 있으면 도루메기를 시키고 없으면 무료로 나오는 잡고기를 먹었던 곳, 그후로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곳이 몇년전이가 VJ특공대라는 프로에 전국의 유명한 대포집으로 소개되면서 일대 변신을 했단다. 직접 보지는 못했고 아는 후배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내부와 외부를 최신식으로 치장하고 크기도 확장했단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집 주위로 또다른 도로메기집들이 간판을 달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는데 바뀐 풍경이 몹시 궁금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도 어찌못하던 풍경을 미디어의 몇초가 단번에 바꾸어버리는 현상, 아마 내가 자주 갔던 그 집은 원조라는 딱지를 간판에 크게 붙이고 있으리라... 대구 가면 가보리라....
오늘 이글을 블러그에 올린다고 검색해보니 그 집의 할매가 올해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네요... 지금은 며느리가 운영하는 모양입니다.
도로메기집, 비에 젖고
어쩌면 한가닥 했을 것도 같다
하루를 공치고
막걸리 한사발로 하루를 위로하는
덩치좋은 저 사십대 아저씨, 그 옆에선
초로의 할아버지들이
정치 이야기로 시끄러운
왕대포 놋주발 가득 부어주는 도로메기집에서
노래처럼 세상을 울리고자 했던
그녀는, 몇 모금 술로도
붉게 달아오르고 나는 그저
삐걱거리는 탁자처럼
기웃기웃,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다
낡은 탁자며 침침한 형광등 속
젓가락 장단으로 흥겹게 퍼져가던
지난 사랑, 유리창 너머로 나타났다 지워져 가면
지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누추한 풍경을 간직한 채
도로메기집, 봄비에 젖고
추적추적, 세월에 젖어 늙어가는
우리의 청춘도 말짱, 도로묵이던가
지난 열망을 안을 수도 물릴 수도 없어
답답한 가슴으로 취해만 가는데
창 밖으로
웅크린 사람들의 어깨 위
젖은 우산이 비틀비틀,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