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의 이야기를 기획출판 '나'가 쓰다
남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 수 없을까 늘 고민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때, 나는 그러한 노력 자체가 남에게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는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마지못해 이과계열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대학입시 실패라는 결과로 돌아와 나에게는 좌절을, 아버지에게는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렇듯 의도와 상관없는 뜻밖의 결과가 돌아오는 불행한 일은 공무원이 된 다음에도 그치지 않았다. 동료 직원이 휴가를 나간 사이에 행정 감사가 나왔는데 동료는 불행하게도 감사와 관련된 자료를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연락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일과 동료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 위해 날밤을 새워가며 고군분투 했지만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동료의 일을 내가 수습하려 한 것이 마치 그가 자신의 일을 나에게 떠맡긴 것처럼 와전되어 동료는 더 심한 경고를 받았다. 그 길로 나는 사표를 던졌다.
두 번째 공무원 시험에 함격한 다음 나는 구치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일부 교도관들과 수감자들 사이에 음성 거래가 오가곤 했는데, 말하자면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셈이다. 야간 당직 근무를 하던 어느 날, 난 보지 않아도 좋았을 그 거래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교도관은 나에게 당시로서 꽤 많은 돈을 쥐어 주며 아내가 몸져 누웠다느니, 자식들 대학 입학이 얼마 안 남았다느니, 이번이 처음이라느니 하면서 집안의 딱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건네 주는 돈을 아들 대학 등록금에 보태라며 위로했다. 교도관은 더욱 절박하게 돈을 건네며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그 때까지 내 머리 속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것이 제1의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아무것도 못 봤다고 이야기를 한 것도 윤리적이거나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단지 남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내 소신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나와 마주치기를 피하던 교도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술자리에서 나에게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자는 식의 악담을 퍼부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돈을 받지 않은 행동을 눈감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나 보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 큰 피해를 주고 만 것이다. 그 때, 그가 건네주는 돈을 받는 것이 내 소신에 맞는 행동이었을까..... 어쨌든, 며칠이 지난 다음 나 역시 사표를 던졌다.
공무원을 그만둔 뒤로 나는 수퍼마켓을 시작했지만 지독히도 장사가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뒤이어 시작한 뷔페식당은 장사는 꾸려 나갈 수 있었지만 신통치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업종을 바꿔 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다. 늘어난 것은 업종을 옮겨가며 엄청나게 늘어난 빚이고, 얻은 것은 늘 손에 들고 다니는 숯불 집게 뿐이다. 볼펜보다야 무겁지만 견딜만한 편이었다.
마지막 직장을 그만둔 뒤로 소신 따위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매달 봉급이 나오지만 장사는 발로 뛰지 않으면 누구도 논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매출 계산에 빌린 돈, 이자와 원금을 생각하며 골머리를 썩다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어떤지 하는 '철학적'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장사가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면 그만 둔 직장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 나는 왜 그런 바보같은 이유로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었을까....
얼마전 머리도 식힐겸 해서 강원도 어디에 있는 암자를 찾았다. 암자에는 스님 한 분과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사랑방 식객으로 묵고 있었다. 그리고 스님이 묵는 방 한켠에는 한지에 먹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인은 남을 위하고 대인은 나를 위한다"
다음은 스님과 내가 나눈 대화의 요지이다.
나: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대인의 삶인가, 소인의 삶인가?
스님: 마음먹기 나름이다. 당신의 생각과 결정이 진정 누구를 위함이었나에 달려있다.
나: 난 단지 그렇게 행동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사실,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떳떳했고 편안했다.
스님: 당신 마음이 편안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제나 원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결과에 대해 당황했다면, '진정 자신을 위한 판단이었나'에 대해서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내면에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어서, 그 대가로 편안함을 구했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잠시 침묵)
나:'대인은 나를 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스님:중생에게 조금의 피해도 주지 않고 사는 인생은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서로에게 조금씩 상처를 주면서 살아간다. 당신의 배려가 상대방과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그 중거이다.
돌아오면서 나는 내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아내는 식당일 때문에 늘 쟁반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그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어나는 빚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어린 아들은 돌보아 줄 엄마를 잃어버렸다. 늙으신 내 아버지는 항상 나에 대해서 근심하신다. 결과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저 그런 이유들 속에서도 계속 직장을 다녔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졌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좋지 못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기고 했다.
지금, 나는 설거지와 행주질을 하고 있다. 그 동안 나는 불쏘기개나 들고 숯불이나 나를 줄 알았지 진짜 힘든 주방일은 아내에게마 맡겨 왔던 것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감격해 한다. 밤이 되면 요식업에 관한 책을 읽는다. 어서 빚을 갚고 매출도 늘려 식당일에서 아내를 해방시키고, 자식들에게는 어머니를 돌려주고, 아버지의 근심도 풀어드리기 위해서다. 모두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최철호 님은 '기획출판 나'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는 일을 한다.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엮고 싶으신 분은 작아 편집실이나 '기획출판 나'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02-861-2840
'작은 것이 아름답다' 199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사고의 전환과 사고의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글 같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글입니다. 도움이 될 수 있기를.....
2004년 11월 18일 늦가을 기획출판 '나'의 최철호가 쓴 김일의 이야기를 황완규가 옮겨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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