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겹으로 퇴적된 눈 속으로 야생의 흔적을 찾아 나서다
-봉화, 울진 경계의 밀렵방지캠페인을 다녀와서-
동찬에게
보낸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메일을 다 읽고 나니 ‘동굴을 지나니 별천지가 있더라’는 설화의 한 대목처럼 전국사회복지대학생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보았다는 설국의 별천지, 고한터널을 뚫고 나오는 그 순간에 펼쳐졌던 순백의 세계가 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이어집니다. 그리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돌구지 소나무들이 가지를 부러뜨리며 낸다는 정겨운 소리도 들리고 눈에 갇혀 탈진해 쓰러진 새의 처참한 형상이 가슴을 안쓰럽게 합니다. 그리고 참, 여느 메일과 달리 ‘철암에서 동찬올림’ 뒤로,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남긴 것은 시간이 되면 연락을 하라는 뜻이였겠지요. 저도 서운했습니다. 가까운 곳까지 가서 연락 한번 못하고 그냥 돌아오자니 마음의 미련이 남아 넛재를 넘어오는데 몇 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변명 같지만 서울에서 못 본 엄청난 양의 눈에 조금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밀렵방지캠페인은 눈 속에서 우리도 야생동물처럼 길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랬지요. 첫날 우리의 눈앞에도 별천지가 펼쳐졌답니다. 물론 칠흑같은 밤이라 그 별천지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요. 아마 낮이었다면 우리들이 뱉아내는 감탄사에 겨울잠을 자는 야생동물들이 놀라서 깨어났을 겁니다. 봉화를 지나고 노루재터널을 지나서도 눈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는데 길을 꺾어 넛재를 넘자마자 길옆으로 쌓인 엄청난 눈이 희미하게 보였지요. 예고가 없는 자연의 힘 앞에서 차는 갑자기 느림보가 되고 우리들은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사위는 빛 하나 없어 정말이지 호랑이가 출몰할 것 같은 밤이었지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홍역같은 것이 무서운 것이었으나 요즘 어린이들은 불법 불량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어쩌구 저쩌구’ 하는, 비디오를 틀면 서두에 꼭 나오던 불법 비디오 시청안하기 캠페인 말입니다. 여기서 호환(虎患)이란 호랑이가 인간에게 가하는 상해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일이 옛날에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것일테지요.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무서운 어둠속에서의 호랑이의 출몰은 일장춘몽처럼 지나가고 호랑이는 그저 우리들의 가슴속에 전설로 희망으로 남겨진 존재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답만이 허공을 울리고 있었답니다.
언젠가 호환(虎患)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앞뒤의 등 모양이 호랑이 눈같이 생긴 자동차, 그 뭐라더라(특정상품 광고의 의도가 없는데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군요), 그 자동차를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 현대인들이 호랑이 눈동자처럼 생긴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것은 옛날 사람들의 목숨을 많이 앗아갔던 호환(虎患)의 20세기 버전이라는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러나 여기서 분명 다른 점이 있지요. 옛날의 호환은 인간과 동물이 서로 무서워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며 조화롭게 살던 데서 오는 것이고 지금의 교통사고는 분명히 인간과 문명이 모든 자연물을 지배하는데서 오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도로에서는 자동차에 치여 죽어가는 야생동물이 있을 테니까요. 물론 내가 야생동물의 입장에 설 수는 없지만 내 몸을 내가 사랑하듯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리라 각오을 다지기고 했지요.
다음날, 올무와 덫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의 목숨을 노리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다섯조로 나뉘어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몇은 울진군 서면 전곡리로, 또 몇은 한달전인가 밀렵된 산양이 발견되었다는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의 황목마을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우리 조는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오미산(梧味山) 서쪽 자락을 파고들었지요. 철도청에서 운행하는 환상선눈꽃열차가 정차하고, 나희덕 시인이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라고 노래한 승부역의 북쪽 지역이기도 하지요.
그야말로 눈천지였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에 올무는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울산엔 오직 인간의 숨소리만이 울릴 뿐 야생동물의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몇 번에 걸쳐 내린 눈은 시간의 두께를 기억하듯 몇 겹의 층으로 퇴적되어 있었습니다. 순백의 눈 위로 우리들의 발자국을 세기며 걷는 길, 아마 우리들의 시간도 다시 눈 위에 또렷이 새겨질까? 상상을 하는 사이 ‘여기요! 여기!’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신호로 하여 우리는 몇 개의 멧돼지 올무와 다수의 토끼올무를 수거하는 쾌거(?)를 이루었지요. 참고로 얘기하자면 제 눈에는 하나도 안 보였답니다. 아마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겠지요. 일행 중 채식만을 하는 ‘생명운동공부모임’의 분들과 산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자는 모토를 가지고 활동하는 ‘녹색친구들’ 회원들이 몇 계셨는데 그들의 눈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내 눈에 안 보이는 것도 그들 눈에 보였으니까요. 아닙니다, 다 마음이고 열정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눈빛과 발걸음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일테고요.
수거 작업이 끝나갈 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동물의 길이 보이고 멧돼지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일정상 아쉬웠지만 멧돼지의 발자국을 따라 하산하였습니다. 하산하는 계곡 쪽의 눈은 무릎 위를 덮고 정강이까지 올라올 정도였지요.
어쩌면 산은 야생동물들의 땅이고 도시 삶에 익숙한 우리들이 잠시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 그들의 땅에 침범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물론 그들도 이해를 해 줄거라 믿습니다. 불순한 의도(?)는 없었으니까요. 거의 내려온 지점에서 문득 요기(尿氣)를 느꼈습니다. 야생동물들이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 눈 위로 한바탕 깔겼지요. 참, 인간의 영역은 놀라울 정도로 넓다 싶었습니다. 조금은 우스운 말 같지만 서울에서 봉화까지 내 영역이라는 표시(?)를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세계일주를 하고 우주여행까지 한다는 시대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불순한 의도는 아니지만 내가 산에 들어가는 것은 야생동물의 눈에는 자기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보일 테니까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사는 법은, 자연생태계가 보전되고 더 이상의 환경파괴가 멈추어지려면 개인은 물론 지구전체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영역이 좀 더 좁아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박하게 말입니다. 너무 꿈같은 얘기 같다고요. 괜찮아요. 꿈의 영역만은 경계가 없으니까요.
잡다한 얘기로 길어졌습니다. 2월 추위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여리고 약한 것을 향해 항상 열려있는 그대의 가슴속은 언제나 봄이겠지요.
2005년 2월 21일 과천에서 황완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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