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귀향일기.2

빛의 염탐꾼 2008. 8. 24. 19:31

귀향일기.2

 

 

빛바랜 덕담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차례상 끝나기 무섭게 고개 돌리며

복주 한잔 받아넘기고

묵묵히 자리만을 지키고 있었을 뿐

한웅큼씩의 침묵을 안주로 씹으며

근거없는 희망과 근심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

들려줄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아진 것이라곤 선물 꾸러미의

호사한 치장과 반짝거리는 옷차림새뿐

진실은 함부로 뱉아 낼 수 없다는 것일까

돌아온 아들딸들이 터뜨리는 맥빠진 웃음을 예감한 듯

"삼시 새끼 이밥에 호강 겨워 하는 짓들이여"

고개 돌리는 어머니의 눈빛 속으로

끝내 묻지 못하는 눈물을 나는 보고 있었다

깊은 품에 안겨 투정부리고 싶은 고향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아들딸을 다독거리시는 어머니

하루하루를 분노로 살아가는 이 아들은

한조각 빛을 타고 흘러가는 어머니의 눈물을

언제쯤 가슴 속에 새길 수 있을까요

고속질주의 그늘 속으로 늘어난 귀경의 시간들이

답답증 섞인 짜증으로 늘어만 가는데

터미널까지 따라 나오시는 어머니 주름살 너머

"나이 한 살 그저 먹는줄 아느냐

세상살이 쉬운게 아니다"

생의 울분으로 손짓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해지고 있었다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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