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전선
아침상 물리며 서둘러 준비하라
내 머지않아 바다와 산맥을 넘어 북상할 테니
피비린내 나는 비의 전선을 펼칠 터이니
마른 침 삼키며 죽어가는 풀포기야
배부른 자의 업보를 지게에 얹고
소처럼 우직한 너희들만 도적으로 쓰러지고 있으니
땅 끝을 파고드는 뿌리는 어딜 가고
스치는 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느냐
너희들 허약한 팔다리 깨우기 위해
세균처럼 번진 독소롤 게워낼 힘의 절정을 위해
오뉴월 무서운 한 맺힘으로
피멍드는 천년의 부름을 몰고 갈 지어다
서너 달 쉬지 않고
천둥 번개 태풍의 비바람을 뿌릴 지어다
짓밟혀 살아온 천지사방 풀포기야
강요된 제초제로 농약으로
분노를 잘라버리며 살아가는 들판은
텅 빈 침묵의 울음소리 뿐
둘러 보라
지금은 태초를 거슬리는 구약의 모래성전으로는
새벽을 깨우지 못하느니
너희가 넘어야 할 길은 억센 노동을 잉태하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높고 험한 해방준령
혼자서 도피하려는 방주의 닻과 노는 일찌감치 버려버려라
오직
갑오년 함성 같은 삽자루 낫자루 준비하지 않으면
서슬 퍼런 죽창을 갈지 않으면
너희에겐 또다시
흉흉한 물난리만이 기다릴 터이니
멍석말이 죽음만이 기다릴 터이니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