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합강리 일박

빛의 염탐꾼 2008. 8. 24. 21:00

합강리* 일박

 

 

 

 

애정을 갖고 바라봐, 신자유주의의 횡포를 모르고

하는 소리야 민주노총의 파업에 대한 내 말이 천박하다며

노동운동을 하는 후배는 언성을 높인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야, 처음의 백지상태로

돌아가야 희망이고 전망이고 생기는 것이라고

나도 따라 핏대를 세우는데

사는 것이 뭐 별건가, 그저 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지 저녁부터 말참견을 하던

주인아주머니는 벌써 잠이 들었다

무심한 여행객들에게 지쳤으리라

모험관광이라는 이정표가 어지러운 인제땅

내린천과 인북천이 합쳐지는 합강리에서

우리는

진보를 추구한다면서 소통이 안돼

입씨름으로 술잔을 부딪치는데

하나되면 또 어쩔 것이야, 소통이고 뭐고

번지점프 한번이면 모든 걸 날려버리지

창밖으로 공사중인 번지점프대가 우뚝하다

내륙으로 갈까, 하류로 갈까, 이리저리

고삐 풀린 망아지로나 살까나

아침 산책길, 삭은 소고삐들이

여기저기 떨어진 늦가을 농로길로

새벽에 잠시 내린다던 철모르는

소나기 내리고 그래, 온다던 것은

때가 좀 빗나가긴 했어도 기어이 오는 것일까

가을 가뭄 사이로

적당한 양을 뿌리고 갔다

 

 

* 합강리: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소재, 내설악에서 흘러온 인북천과 남설악에서 흘러온 내린천이 이 마을에서 합쳐져 소양강이 된다.

 

 

2002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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