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길게/자작시

개미이야기

빛의 염탐꾼 2008. 8. 24. 20:42

개미 이야기

 

 

무엇으로 다시 등불을 매달 것인가

북 치고 장구 두드려 시대를 울려보자 달려왔건만

세상이 보란듯이 앞길을 가로막는 오늘

한 손에 두루말이 휴지를 들고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 돌아

노동운동가와 서로의 상한 머리를 올리고

어렵사리 구한 선배의 신혼 방에 집들이를 간다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처럼

밝은 무늬로 감추어도

남루한 흔적 얼룩을 드리우는데

어려운 살림 꾸려가면서도 후배들 공연에 꼭 꼭 와서

굶지 말거라 단 돈 얼마라도 쥐어주고 토큰 몇 꾸러미로

열심히 뛰라는 말 대신하던 형 공연 어땠어요 물으면

나야 문예운동판 떠난 지 오래되어서......

웃으며 돌아서던 형 서로들 빈 가슴에

오랜만에 술잔이 돌고

찌든 세월의 몰골 또한 우리의 몫이 아니던가

시대를 잘못 만났느니 세상 탓이라느니 하는 말은

서로를 향한 욕일 수밖에 없어

가슴 속 깊이 묻어버려야만 하는데

빠른 세월만큼 술잔은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

흐린 눈매를 감추려고 되돌아본 방 한구석

개미들의 잔치가 요란스러워

형, 방에 개미가 끓네 곧 부자 되겠어

서로들 얼굴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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